[TV삼분지계 어워드 2019] ③ 올해의 드라마
‘눈이 부시게’·‘동백꽃 필 무렵’·‘녹두꽃’. 세대를 넘어 차별을 넘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자, 미디어 시장의 격변기였던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TV삼분지계]는 올해도 3주에 걸쳐 유달리 뜨거웠던 한 해를 정리하는 [TV삼분지계 어워드]를 진행한다. 세 평론가가 세 장르에서 각각 한 편씩 고른 작품들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2019년의 기억과 성취를 되짚어보는 시간 되시기를 바란다. 마지막 시상 부문은 드라마다.

2019년의 드라마 시장은 말 그대로 격변이었다. 지상파 채널들은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며 월화드라마 슬롯을 없앴고, <이몽>이나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처럼 각 방송사들이 야심차게 선보인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화제성 면에서나 비평 면에서 모두 어정쩡한 결과를 거두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는 와중에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했고,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숏폼 드라마 콘텐츠들은 거침없이 약진했다. 시장 전체가 급변하는 시기, 과연 ‘좋은 드라마’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는 한 해였다.

[TV삼분지계]가 선정한 올해의 드라마들은, 그 고민에 대한 정석적인 대답을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리 즐거운 주제가 아닌 탓에 주류 미디어에서 좀처럼 잘 보여주지 않던 ‘노화의 감각’을 주재료로 삼아 시청자들을 설득했던 JTBC <눈이 부시게>와, 한민족의 투쟁의 역사를 영웅이 아닌 평범한 민초의 자리에서 다시 조망한 SBS <녹두꽃>, 고아와 비혼모처럼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이들의 곁에 선 KBS <동백꽃 필 무렵>까지. 세 작품은 모두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소외당하고 오해받았던 이들을 대변해 목소리를 낸 작품들이었다. 드라마를 ‘픽션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인간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이 세 편을 올해의 드라마라 부르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주의: 각각의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 <눈이 부시게> - 시간을 넘어, 세대를 넘어. 교감하러 달려온 드라마

올해 둑이 터진 양 물밀 듯 쏟아진 드라마들, 그 많은 드라마 중에 <눈이 부시게>를 으뜸으로 꼽는 이유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이 시대 당면 과제인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내 삶은 노년인 혜자(김혜자)와 중년인 혜자 아들(안내상)과 며느리(이정은)의 중간 지점이지만 두 연령대는 물론이고 젊은 층의 애환과 고민도 가슴 저리게 다가왔었다. 굳이 가족의 의미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부모를 생각하고 자식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종영한지 열 달이 넘었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앞으로 이만한 여운의 작품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올 해의 드라마를 넘어 인생 드라마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중반까지는 타임 슬립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가끔씩 안내상과 이정은의 연기가 상황에 맞지 않게 겉돌아 의아했었다. 그래서 연륜 있는 연기자들을 이렇게 밖에 활용 못하나, 불만이 좀 있었다. 나중에 치매 노인 시점이라는 걸 눈치 채고 나니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 둘씩 맞춰졌다. 부부가 딸(한지민)과 어머니(김혜자)를 왜 데면데면 대했다 애처로워했다 오락가락 했는지, 왜 늘 슬픈 눈빛이었는지.



맞네, 그래서 그랬군! 두 번 세 번 다시 봐야 어디 가서 <눈이 부시게> 봤다는 소리 할 수 있는 드라마다. 노년의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김혜자 씨의 연기. 뒤태조차 한지민을 그대로 복사해냈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나. 그런 거장과 호흡을 주고받은 남주혁의 노력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모처럼 이어진 세대 간의 교감이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끝나지 않기를.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동백꽃 필 무렵> -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세상에 기적처럼 찾아온 귀한 드라마

“너무 함부로, 너무 외롭게 떠났다.” 향미(손담비)의 죽음 앞에서 오열을 멈추지 못하던 동백(공효진)의 말은 2019년을 돌아보는 이 시점에서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것은 수많은 이의 혐오와 편견 속에서, 혹은 누구의 시선도 머물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고독하게 세상을 마감해야 했던 모든 이들을 향한 추모였다. “너 하나는 그냥 나 좀 기억해주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간 거 같지”라던 향미의 마지막 부탁은 동백이 향미의 진짜 이름을 딸에게 붙여준 엔딩신으로 응답받는다. 세상에서 가장 멸시받고 차별받던 여성의 비극적 죽음으로 시작한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은, 그렇게 남은 자들이 그녀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동백의 대사와 함께, <동백꽃>의 미덕을 잘 드러낸 또 하나의 대사는 기어코 동백을 포용하는 덕순(고두심)의 말이다. “헤어지고 말고야 니덜 쪼대로 하고. 그래도 기어코 나한테 온다믄, 내가 너를 귀하게, 귀하게만 받을게.” “귀하게”라는 덕순의 말은, 향미와 동백을 향한 “함부로”의 폭력에 대한 정확한 대응어다. 덕순은 동백을 따돌리고 혐오하는 옹산에서 제일 먼저 친구가 되어준 인물이었다. 동백처럼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던 아픔이 그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만든 힘이었다. 그런 덕순도 막상 아들 용식(강하늘)과 동백의 사이를 알게 되자, 동백과 어린 필구(김강훈)에게 상처를 준다. 덕순의 갈등은 선의를 지닌 개인조차도 사회적 관습에서 오는 편견과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에 대한 이해다. 사람이 성별, 출신, 장애, 종교 등 그 어떤 것으로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동백꽃>은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인권의 기본적인 개념을 환기한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녹두꽃> - 사람이 사람으로 살고자 걸어온 100년

3.1 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드라마지만, <녹두꽃>은 1919년이라는 시공간이나 항일운동이라는 주제 안에만 갇히지 않았다. <녹두꽃>은 오히려 시간을 25년 더 뒤로 당겨 125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을 응시한다. 이방의 얼자로 태어나 고을 백성들을 핍박하고 수탈하는 데 앞장섰던 백이강(조정석)과, 일본 유학 후 개화의 꿈을 꾸었으나 이방의 자식이란 이유로 차별을 당했던 동생 백이현(윤시윤), 상인이 천대받는 조선에서 거상이 되는 꿈을 꾸는 객주 송자인(한예리)은 모두 당대의 비주류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동학농민혁명과 개화라는 세상의 변화를 만나 각자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린 <녹두꽃>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또한 평등한 세상을 향한 민초들의 오랜 투쟁과 저항의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임을 명확히 한다.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 없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전(대동세상)이, 그것의 체계적인 모델인 ‘공화정’에 대한 상상(민주공화국 선포)보다 먼저 있었음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제각기 ‘실패한 혁명’(동학농민혁명)과 ‘민족 저항 운동’(3.1 운동)으로 기록되었던 두 사건은, 시차를 뛰어넘어 하나의 계보로 묶이는 순간 면면이 흘러온 유구한 투쟁의 역사가 된다. 그러니 “그 날의 위대한 전사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태그라인은, 어쩌면 “그 날의 위대한 전사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질문”으로 바꿔 읽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먼 훗날 당신들의 시대에는 이루어졌느냐고.



보는 사람마저 따라서 웃고 울게 만드는 힘을 지닌 조정석과 강인하고 영민한 혁명의 목격자 역할을 한 한예리,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까다로웠을 역할을 근사하게 수행해 낸 윤시윤, 그리고 전봉준 그 자체로 화한 최무성의 연기 또한 놓칠 수 없는 백미다.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건 정현민 작가의 시선이다. 전작인 KBS <어셈블리>와 KBS <정도전>을 통해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인물 군상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한 바 있는 정현민 작가는, <녹두꽃>에서 실존인물들 사이에 당대 백성을 상징하는 가상인물들을 끼워 넣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시야를 증명한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JTBC, 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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