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대작 ‘백두산’의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연말 최고의 기대작 <백두산>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는 장점과 한계를 분명하게 지닌다. 300억 원 제작비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CG와 스펙터클이 좋은 데다, 스케일이 남다르고 배우들도 모두 제몫을 한다. 재난, 남북문제, 밀리터리의 요소가 골고루 섞인 데다, 코미디와 가족신파의 농도도 적절하다. 버디 무비로서 잔재미를 쌓은 덕에 128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결말도 의미 있다. 남과 북의 ‘아버지들’이 힘을 합쳐 미국과 중국의 간섭을 따돌리고, 민족을 공멸의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민족주의적인 해법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북핵문제를 풀어야하는 현재 국면에서 나름 최선의 해법일 수 있다.

반면 한계도 명확하다. 편집이 몹시 튀는데다,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실망스럽다. 후반으로 갈수록 클리세 범벅이라는 점도 아쉽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730만 명이었다는 위험부담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북한 지도부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데다, 지구환경적인 사건을 지정학적인 문제로만 국한해 풀어낸 것은 시각의 한계로 보인다.



◆ 재난보다 지정학적 접근

영화는 백두산 화산 폭발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북핵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적극 활용하며, 전투액션과 버디무비 요소가 강하다. 즉 <아마겟돈> 식의 재난 영웅물이 아니라, ‘판도라’ ‘PMC : 더 벙커’ ‘강철비’ 등이 골고루 섞여 있다.

백두산 화산폭발은 황당한 상상이 아니다. 백두산은 946년 대분출 이후 1903년까지 서른 번 가량의 크고 작은 분화가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분화전조 현상이 관찰되면서, 최근 십여 년간 여러 차례의 학술발표회나 토론회가 열리고, 남북 논의도 몇 차례 있었다. 기상청은 지난해 5월 부산대에 화산특화 연구센터를 열기도 했다. 게다가 북한의 변고 시에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유추가 가능하기에 영화가 다루기에 핫한 소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이 없어서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뼈아픈 사실과 북한 체제 붕괴 시에 중국이 야욕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은 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아버지들’이 힘을 합치고, 기폭장치를 가동시키는 등 벼랑 끝 전술을 써서, “다 꺼져”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을 따돌리고 한반도의 생존을 모색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결말이다. 즉 ‘우리 민족끼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민족주의적인 함의와 ‘북핵’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남북을 공멸의 위험이나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독특한 ‘북핵관’을 드러낸다. 이점에 있어서는 <강철비>와 궤를 같이 한다.



◆ 사라진 북한과 국제사회

하지만 몇 가지 의아한 대목이 있다. 첫째는 북한 수뇌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화는 북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졌을 거란 외신 보도와 북한 수뇌부와 핫라인이 완전히 끊겼다는 청와대의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 보도는 이후 장면들을 통해 보충된다. 남한 전투기가 북한 영공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막아선 것은 화산재였으며, 남한군이 수용소를 찾았을 때 이미 폭동으로 교전 없이 입성할 수 있었다. 북한군과 유일한 교전이 벌어진 곳은 ICBM 미사일이 보관되어 있는 공장에 들어갈 때이다. 산발적으로 피난을 가는 북한 주민들만 보일 뿐이며, 이후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군과 중국인 무리이다. 북한의 수뇌부와 군부는 완전히 궤멸되어 존재자체가 사라져있는데, 이를 어찌 보아야 할 것인가.

북한은 수십 년 째 “미제의 침략에 대비해” 살고 있다. 미군의 공습 등에도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사회가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며 산다. 재난 등 비상상황에서 오히려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국가, 군대, 민병대, 자치조직 등인데, 북한은 모든 조직이 소멸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에필로그는 1년 뒤 남북 공동 재건위를 만든다는 말이 나온다. 공동 재건을 할 주체가 남아 있다니, 북한체제는 붕괴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수뇌부와 군부 등은 재난의 순간 모두 지하벙커에 숨어 있다가 남한군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으로 사태가 수습된 이후에 나타나서 다시 체제를 다잡았다는 뜻인데, 그게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혹자는 영화가 북한인을 친근하게 그리고, 미군을 방해세력으로 그린다며 친북·반미 영화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재난 상황에서 북한의 정치체를 완전히 증발시킴으로써, 북한을 국가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그저 한반도 일부를 점거하고 있는 무장 세력만도 못한 집단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엄청난 재난이 난 상황에서 북한 사람의 목소리는 오직 이중스파이인 리준평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데, 그는 “북한이 망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망할 줄은 몰랐다.”며 북한체제에 대한 냉소적인 감상을 들려준다.

요컨대 영화가 바라보는 북한은 내부인이 보았을 때도 어떻게든 망할 체제이고, 위험의 발상지이나 위험을 스스로 통제할 힘은 없어서 남한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이웃이지만, 더 위험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통과 협력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평균적인 남한 시민의 북한관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의아한 점은 백두산 폭발을 한반도에 국한된 지정학적 문제로만 파악할 뿐, 더 넓은 시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백두산이 폭발해서 서울 강남대로에 강진이 날 정도이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일부 지역도 재난의 자장에 들어간다. 접경지역에서 수많은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므로, 인도적 구호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도 있어야한다. 곽재식의 소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 나오듯, 동아시아 대도시의 항공 물류 대란도 세계경제에 또 다른 재난이 될 것이다.

또한 화산폭발은 일종의 환경재앙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지진, 화산재, 화산성 겨울, 눈폭풍, 흉작 등의 환경문제가 더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다. 즉 백두산 폭발은 국제사회의 문제이자 지구환경에 대한 문제이지, 남북한에 국한된 지정학적 위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 글로벌한 문제의식을 담은 단 한 줄의 대사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 티격태격 버디무비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인 재미가 관객을 만족시킨다. 재난영화는 서사가 단조로울 수 경우, 스펙터클한 재난 장면의 깜짝쇼가 되기 쉽다. <백두산>은 이병헌과 하정우의 티격태격 버디무비로 재난 장면 사이의 공백을 메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두 배우의 매력이 충분히 돋보이는데, 특히 이병헌의 탁월한 연기력은 비밀 많은 인물에 생생한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이중스파이인 리준평(이병헌)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첫 등장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그의 다중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그는 러시아어, 북한 말투, 중국어 등을 자유자제로 구사하며,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준다. 그는 공백이 많은 캐릭터이다. 단 한 장면 나오지만 존재감 쩌는 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인지, 많은 사연이 생략되어 있다. “감상에 젖으니, 배신도 하는 것” 이라는 그의 말처럼, 우수에 찬 듯 보이지만, 순간순간 코믹을 소화하고, 이따금 서늘하고 집중된 표정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한편 조인창(하정우)는 관객이 동일시 할 수 있는 남한의 보통 사람이다. 군복을 입고 나왔던 ‘PMC: 더 벙커’의 주인공보다 인간미가 있으며, <터널>의 주인공처럼 약간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첫 장면부터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조마조마한 불발탄 해체작업 중에도 조인창은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예기치 못한 작전에서 능력이 후달리는 상황에서도 나름 평정을 유지하던 그는 리준평에게 포로로 잡히자, ‘현타’가 온 듯 “나 이제 민간인인데, 여기 북한이고...오늘 너무 힘들다. 형 나 좀 봐줘.” 라며 떼를 쓴다. 이는 그가 평범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리준평과 조인창이 공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두 가지 계기이다. 하나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아버지로서 느끼는 동질감이다. 재난 앞에서 남북은 공생 공멸의 관계에 놓인다.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환유하는 것은 기폭장치이다. “공화국의 보물인지 짐인지”모를 기폭장치를 끌고 둘이 낑낑거리며 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국 기폭장치를 작동시킴으로서 중국과 미군을 모두 물러나게 만드는 것까지 남북이 하나의 운명으로 절박하게 묶여있음을 잘 형상화한다.



이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지뢰’가 보여주었던 상징성을 더 큰 스케일로 확대한 것이다. 또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익숙한 설정이다. 리준평이 남한의 드라마 중 하필 <다모>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국 조인창에게 ‘아버지가 될’ 기회를 주고 딸을 부탁하는 것까지 매우 익숙하게 흘러간다. 이는 <강철비>의 결말을 매우 강하게 환기시킨다.



◆ 무조건 살아남아 아기를 낳으라고?

이들의 아버지성이 강조되는 동안, 지영(배수지)의 캐릭터는 클리셰의 파도에 휩쓸렸다. 애초 만삭의 임신부로 남편의 희생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미국으로 대피하게 되어 있는 설정부터 대단히 수동적인 젠더 역할을 부과한 것인데,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남편의 작전수행 장면과 아기 낳는 장면을 교차편집 하는 것까지 여성을 아이 낳는 존재로 국한시키는 한계에 빠진다.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매끄럽지 못한 편집인데, 특히 지영의 장면에서 중간 생략이 심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위급한 상황에서 지영이 어떻게 번번이 살아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초겨울에 한강물에 빠졌다가 젖지도 않은 상태로 시간에 맞춰 미군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무리한 편집은 재난 시 임신부인 그가 홀로 느꼈을 공포나 주체적인 생존 의지 등을 모두 생략해버리고, 오로지 무사히 아이를 낳아 모성을 수행하는 존재로 보이도록 한다. 이런 과감한 생략의 와중에, 겨우 연락이 닿은 남편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는 민폐 장면을 굳이 넣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중요한 여성 캐릭터를 그저 아이를 낳는 존재이자 국가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자기 기분에 빠져 바가지나 긁는 하찮은 존재로 그리려는 ‘여성혐오’적 시선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수지를 캐스팅한 여성 캐릭터를 개성 없는 임산부로 소비하고, 역대급 카메오를 죽어가는 여자로 한 장면을 할애하면서, 두 남자의 우정에 집중한다. 오죽하면 쿠키 장면까지 두 남자의 다정하고 실없는 농담으로 채웠을까. 지영에게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설정하거나 최소한 편집만 덜 했더라면 보통의 남한 사람으로 느끼는 재난의 공포를 훨씬 생생하게 전하며 더 풍부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쿠키 장면으로라도 리준평과 아내의 장면을 한 컷 넣었더라면 궁금증도 덜고 훨씬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다. 무척 재미있고 성공적인 대작임에 틀림없지만, 영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한 발 더 나간 시각을 담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백두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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