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도 여성 예능인의 맹활약 이어지길 기대하며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2020년이다. 2020년대가 시작됐다. 통상 0년으로 끝나는 해가 돌아오면 각 분야별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을 예측하는 작업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방송 예능 분야는 어떨까. 2010년대는 ‘MBC <무한도전> 종영’에서 출발해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대 <무한도전> 시작과 함께 10년 이상 집권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쇠퇴하고 MBC <복면가왕>류의 음악 예능과 SBS <미운 우리 새끼> 계열의 관찰 예능, 두 흐름이 주도하는 시대로 전환됐다고 2010년대를 투박하게나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예측은 난해한 일이다.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방향을 가늠해볼 수는 있다. 예능의 변화를 논하면 떠올릴 만한 상징적 장면이 2019년 12월 30일 만들어졌다.

이영자와 박나래. 둘이 무대 위 함께 있는 <2019 MBC 방송연예대상> 투샷이다. 이영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라 관례에 따라 시상자로 나왔고, 박나래는 올해 대상 주인이다. 2년 연속 여성 연예인이 연예대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어 여성이 여성에게 상을 전달하는 이런 그림은 최초다.



2연속은 고사하고 여성은 대상 자체를 수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이영자가 MBC와 KBS에서 연예대상을 받기 전까지 대상은 단 두 번(2001 MBC 박경림, 2009 SBS 이효리·유재석), 그것도 한 번은 공동 수상이 전부였다.

이영자와 박나래는 2019년 상반기 개그맨 브랜드 평판 월별 순위에서 ‘끝판왕’ 유재석과 1~3위를 다투는 등 연말 대상 수상자로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다. 이들만이 아니다. 송은이, 김숙, 안영미, 장도연 등도 남성들밖에 보이지 않던 예능 MC 분야에서 최근 들어 맹활약중이다.

단순 수적 성비로만 따지면 예능계의 남녀 불균형은 아직도 많이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최근 여성 MC들의 존재감 부각은 의미 있어 보인다. 기량 좋은 여성 예능인들이 우연히 동시대에 몰려서 벌어진 개인 차원의 현상이 아니라 예능 트렌드 변화가 능력 있는 여성 MC들이 조명받을 새 장을 만들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쇠퇴와 함께 바뀐 것은 원톱 MC에 대한 의존도 감소다. 2000~2010년대 예능 프로그램 포맷은 주로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과 같은 특급 MC들이 여러 연예인 패널이나 게스트를 이끌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때로는 부족하면 본인의 몸까지 던지는 리더십 진행에 맞춰졌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부터 예능의 대세 트렌드로 성장해온 관찰 예능에서는 좀 달라졌다. 관찰 예능 중 영상을 보면서 추임새 설명을 넣고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 인기 있는 패턴 중 하나인데 여기서는 MC의 리더 역할은 감소하고 대화자 중 한 명으로 일상 수다 방식의 웃음을 만드는 만담형 재미 유발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에 부합하는 능력을 갖춘 여성 예능인들이 부상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아직은 여성 MC들이 관찰 예능 특성 맞춤형 활동에만 안주할 수는 없었다. 박나래의 분장쇼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영자, 박나래, 김숙, 안영미, 장도연 등 여성 MC들은 거의 대부분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들도 겸비해서 웃음 코드를 확장했다.

관찰 예능은 생활밀착형인 경우가 많다. 관찰 예능 속 VCR 출연자 경우에도 일상의 디테일들에 대한 이해, 주변 인물, 사물과의 감성적 교류 등이 있으면 좋은 웃음을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런 특성도 여성 출연자들에게 분명 강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관찰 예능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진행자나 출연자 모두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형식 차원만이 아니라 예능의 소재 측면에서도 여성들이 강점을 보일 영역은 계속 넓혀지고 있다. 먹방 여행 육아 반려동물 등을 거쳐 최근 뷰티까지 이미 많은 생활친화적 소재들의 예능이 등장했고 여성 MC나 패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방송의 주요 시청자층이 30, 40대 여성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진행자나 출연자의 여성성이 강점을 발휘할 예능들이 형식이나 소재면에서 최근 몇 년간 예능의 주류로 성장해왔다. 물론 여전히 생활친화형 예능에도 메인 MC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요리 프로그램 영역은 굳이 백종원을 언급하지 않아도 진행자가 셰프든 예능인이든 김수미 정도를 제외하면 남자 일색인 것도 현실이다.

이전에 비해 MC 지배력은 약해졌지만 SBS <런닝맨> JTBC <아는 형님> tvN <신서유기> 등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는 남성 원톱 MC 체제의 프로그램들도 꽤 있다. MBC <나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처럼 여성 MC들이 성과를 거둔 관찰형 예능 시청률이 런칭 초반만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예능 포맷의 트렌드 변화와 맞물려 여성 예능인들의 활약상이 증가해온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예측이나 전망처럼 거창한 마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2020년대에도 여성 예능인의 활약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정도는 해봐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영자·박나래의 투샷은 대단한 성취를 나타내는 장면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간 봉우리 정도라 해두고 싶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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