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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만큼의 모험도 시도 않은 ‘백두산’ 제작진은 겁쟁이다
기사입력 :[ 2020-01-02 14:58 ]


‘백두산’·‘스타워즈9’, 용기 없는 제작진이 내놓은 진부한 결과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언젠가 백두산 폭발이 소재인 재난 영화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독점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소재니까. 같은 화산 소재 영화를 만들더라도 <단테스 피크>나 <볼케이노>와 같은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한국적인 재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이건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좋은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런 종류의 재난 영화는 대규모의 제작비가 필요하며, 이 경우 영화의 각본은 자연스럽게 ‘천만 영화’의 공식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천만 영화 자체가 아니라) 천만 영화의 공식으로 만들어진 기성품 영화 중 과연 잘 만든 영화들이 얼마나 되던가.



완성된 <백두산> 영화의 결과물은 번지르르하면서도 진부하다. 기술적인 면, 특히 CG와 특수효과는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다. 충무로 사람들이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던 그 부티 나는 스펙터클이 스크린 위에서 재현된다. 이건 중요한 성취이고 누군가 어디에서 계속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 기술로 그리려고 하는 그림과 내용에 대해서는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캐스팅만 봐도 그렇다. 자연인에 대한 호오도를 떠나,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전체적인 수준은 높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징그러울 정도로 천만 영화스러운 이야기에서 천만 영화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배우를 보는 재미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이들 중 가장 심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은 하정우다. 바로 1년 전에 관객들은 하정우가 북한 남자와 브로맨스를 나누며 액션을 하는 걸 봤는데, 거의 똑같은 그림이 그대로 재현된다. (분단 상황을 다루는 충무로 사람들은 브로맨스 이외엔 할 말이 없냐고 묻는 게 순서지만 이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했으니 이번엔 생략하기로 한다.)



여자배우들의 캐스팅은 정말 슬플 정도인데, 그 중 스타 캐스팅된 배수지는 임신한 아내이고 전혜진은 <불한당> 때부터 꾸준히 맡고 있는 ‘여기 여자도 있으니 대신 실드 쳐주세요’용 알리바이 캐릭터라면 캐릭터 구축에 도대체 몇 초를 들였는지 궁금해질 정도이다.

이건 겁쟁이의 각본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루는 거의 모든 재료들은 상사의 비싼 자동차를 대신 모는 말단사원이 운전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부함의 정도를 걷고 티끌만큼의 모험도 하지 않는다. 너무 겁이 많아서 백두산 대폭발과 같은 특별한 소재를 제대로 다룰 생각이 없다. 별 생각 없이 천만 영화 지망생만 골라보는 관객들에겐 이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고 이 영화도 그들의 도움으로 7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운이 좋으면 천만을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두산>이 과연 그만큼 재미있긴 한 영화인가? 과연 언제까지 이런 영화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어야 할까?



겁쟁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 넘게 이어진 스카이워커 9부작의 종지부를 찍는 영화인데, 1월 개봉이지만 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사회를 보았고 지금 감정이 많이 복잡하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나 같이 몇 십 년 동안 이 시리즈를 따라온 관객들을 뭉클하게 할 팬 서비스들을 많이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막판의 클라이맥스에서 웨지 안틸레스의 주름진 얼굴이 화면에 크게 잡힐 때 내가 울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이야기도 아주 심하게 나쁘지는 않다. 딱 한 가지 이유만 없었다면, 난 이 영화에 아주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감상적인 기분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영화 이전에 <라스트 제다이>가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는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에 불과했던 <깨어난 포스>에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것은 더 이상 스카이워커의 족보가 별 의미가 없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작가의 세계에서 영웅이 될 수 있는, 훨씬 광대한 의미와 이야기의 가능성이 열린 곳이었다. <라스트 제다이>는 40년 가까이 이어졌던 아버지 집착을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영화였다.

딱하게도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마치 2편이 없었던 것처럼 그 진부한 부계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전편에서 열었던 수많은 가능성은 다 묻힌다. 이걸 수습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지 모르겠는데, 그 ‘수습 과정’은 지루한 변명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딱 <제다이의 귀환>의 리메이크다. 심지어 팔파틴 황제가 그대로 다시 등장해 비슷하게 나쁜 짓을 하다가 비슷하게 퇴장하는. 오리지널 리메이크는 <깨어난 포스> 하나로 충분하지 않던가?



결국 이것도 겁쟁이의 영화이다. 겁에 질려 <라스트 제다이>에 분노했다는 그 목소리만 큰 인간들의 불평을 다 들어주다가 이 꼴이 난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의 감흥은 <제다이의 귀환>보다 나쁘다. <제다이의 귀환>도 아주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영화는 첫 영화부터 시리즈를 끌어온 창작자의 고집이 보였고 큰 그림을 통해 보면 만족스러운 결말의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엔 그게 없다. 40년 넘게 따라온 시리즈가 이렇게 쓸개 없는 결말로 끝나다니 슬플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백두산><스타워즈9>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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