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독’을 웰메이드 드라마로 만든 서현진·라미란의 선택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은 2020년을 여는 웰메이드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다. <블랙독>은 그간 드라마에 주목하지 않았던 교무실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사실 수많은 학원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그 드라마의 중심은 언제나 교실이었다. 교무실은 교사들이 잠시 푸념을 나누거나 학생들의 문제를 토로하는 장소로 쓰이는 것이 전부였다.

돌이켜 생각하건데, 학창시절 학생들이 느끼는 교무실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만 생각했다. 교무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선생님들의 삶에는 어떤 그늘이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학생들에게는 없다.

<블랙독>은 우리가 겪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던 그 교무실의 깊은 삶에 주목한다. 학창시절 고작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잠깐 들렀던 교무실과 <블랙독>의 교무실은 다르다. 학생의 눈으로 본 교무실이 아닌, 교사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교무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우주다. 시청자들은 대치고 기간제 국어교사 고하늘(서현진)의 시선으로 이 우주 속으로 들어간다.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한 박주연 작가가 써낸 <블랙독>은 우선 그만큼의 현실적인 디테일들이 강점이다. 입시설명회와 시험문제 출제 등에도 이렇게 많은 교사들의 노고가 필요한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또한 정교사가 되기 위한 기간제교사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 역시 팽팽하게 묘사된다. 학력고사 세대나 수학능력시험 세대와 다른 시험문화나 입시제도 등을 지켜보는 재미 역시 깨알 같다.

하지만 <블랙독>의 매력은 실제 교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현실적인 디테일이 전부가 아니다. <블랙독>은 교사 직업군 특유의 감정선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 때문에 <블랙독>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감 포인트에 더해 교사들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블랙독>을 보고 나면 교사는 나이가 많건 적건 청소년과 어른들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대기업 직장인이나 공무원들과는 다른 10대의 때타지 않은 맑음이 남아 있다고 할까? 물론 그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상처받고 토라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영혼이기도하다.



<블랙독>은 고요하고 정적인 드라마지만 교사들 각각의 흔들리는 감정선 때문에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읽다보면 고교시절 기억 속의 몇몇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블랙독>을 보면 그때는 미처 몰랐던 선생님들의 우울했던 표정이나 밝게 웃던 표정들 뒤에 무엇이 존재했는지 언뜻 알 것도 같다.

<블랙독>은 또한 모든 교사 역할의 배우들과 학생 역할의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뤄내기도 한다. 주인공과 조연이 아닌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이 부딪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튀는 지점 없이도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며 현실감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하늘(서현진)과 박성순(라미란)의 역할은 상당하다. 대치고 진학부에서 만난 새내기 기간제와 베테랑 교사. 이 둘이 만들어가는 팽팽한 긴장과 우정의 시퀀스가 <블랙독>의 큰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 서현진과 라미란은 <블랙독>을 통해 어김없이 주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사실 서현진은 <또, 오해영!>과 <사랑의 온도>, <뷰티인사이드> 등을 통해 멜로감성 드라마의 새로운 히로인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 그녀의 <블랙독> 선택은 의외였다. 이 드라마에는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미소 짓는 혹은 미소 지으며 눈물 머금는 연기에 특화된(이게 어쩌면 계약직 직장인의 밈적인 표정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이 배우의 <블랙독> 선택은 탁월했다.



<블랙독>에서 서현진은 남자주인공이 아닌 학교라는 우주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과의 교감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교무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진유라(이은샘)와 마주보는 장면처럼 서현진은 대사 없이 긴 대사를 말한 것 같은 멋진 장면들을 <블랙독>에서 만들어냈다. <블랙독>으로 이 배우가 단순히 로맨스드라마에 특화된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한편 라미란은 조연배우에서 KBS <우리가 만난 기적>의 조연화로 주인공까지 맡은 배우다. 하지만 라미란의 조연화는 그녀가 지닌 기존의 억센 중년여성 캐릭터를 재활용했을 뿐 큰 임팩트는 없었다. 그에 비해 <블랙독>의 박성순은 라미란의 연기 폭이 얼마나 넓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캐릭터였다.



라미란은 교무실에 실제 있을 법한 무덤덤한 성격의 부장교사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감칠맛 있는 순간순간의 연기로 드라마의 재미를 올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과의 미팅이 실패로 끝난 후,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며 읊조리듯 주정하는 연기를 통해 생활인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라미란은 다양한 층위의 성격을 가진 박성순을 라미란이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을 통해 몇 배는 더 훌륭하게 표현한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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