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내세운 영화들, 왜 고전했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올해 초 영화계의 특징을 하나 뽑으라면 비인간 동물에 대한 영화가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먼저 동물과 말을 할 수 있는 수의사가 주인공인 고전 동화를 각색한 <닥터 두리틀>이 있다. 문을 닫을 위기에 빠진 동물원을 구하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해치지 않아>와 동물과 말을 할 수 있게 된 국정원 직원을 그린 <미스터 주: 사라진 VIP>, 비둘기로 변한 슈퍼 스파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스파이 지니어스>가 그 뒤를 이었다.

아카데미 시즌을 맞아 빅풋과 예티가 나오는 라이카 애니메니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다시 극장에 걸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지나간 <캣츠>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넷플릭스로 방향을 돌리면 살인혐의를 받는 카푸친 원숭이를 수사하는 내용의 데이빗 린치 단편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주제나 소재 면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주제는 대부분 영화들이 공유하고 있다. 동물원은 <해치지 않아>와 <미스터 주> 모두에서 중요한 무대이며 심지어 배우 한 명(박혁권)과 동물로 분장한 인간이라는 설정도 공유한다. 동물권과 동물 복지라는 주제도 꾸준히 반복된다. 계보를 그린다면 이들 대부분은 휴 로프팅의 <닥터 둘리틀> 동화 시리즈에 수렴될 것이고 실제로 한 편은 그 시리즈의 각색물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특징을 들라면, 이 영화들은 이전과는 달리 실제 동물에 그리 의지하지 않는다. <미스터 주>에서 훈련받은 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에서 카푸친 원숭이의 얼굴에 사람 입을 합성하는 고전적인 기술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이들 영화 속의 동물들은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다. 기술적 완성도는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받아들일 만하고, 이를 통해 학대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면서 동물 캐릭터를 갖고 할 수 있는 게임의 영역이 늘어난다.



단지 이 영화들이 이를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닥터 두리틀>과 <미스터 주>는 모두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동물의 의인화라는 쉬운 설정에 동원하고 있다. 의인화 자체에 대해 뭐랄 수는 없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과 복잡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지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이들 영화는 로프팅이 훌륭하게 해냈던, 동물 고유의 특징과 인간성을 결합하는 정교한 시도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굵직한 중견 배우들의 목소리를 빌린 두 영화 속 동물들은 모두 21세기 인간 코미디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닥터 두리틀>의 동물들이 상대적으로 정교한 캐릭터 연기를 하고 있다면 <미스터 주>는 성우들의 개인기와 얄팍한 스테레오타이프에 의존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이러다보니 모든 게 조금씩 위선적이 되어간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가상의 동화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닥터 두리틀>보다 지금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 주> 쪽이 여기서 더 피해를 많이 입는다. 한 달에 몇 십 억의 동물을 공장식으로 학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물과 의사소통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세계에서 동물들이 감금되어 전시되는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가. <미스터 주>는 여기에 대해 큰 고민이 없다. 이 영화의 모든 동물들은 그냥 코미디의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이들 영화 중 가장 솔직한 작품은 <해치지 않아>이다. 다른 동물원에 팔아 넘긴 동물 자리를 동물로 분장한 직원들이 채운다는 이 코미디와 다른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인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 속 동물들은 현실적인 동물이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의사소통과 이해에는 한계가 있으며, 동물원은 감금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공간이다. <해치지 않아>는 이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 분장한 직원들에게 이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 솔직함은 해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코미디 영화로서 <해치지 않아>의 한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직원들을 생각하면 동물원을 살려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물들에게 옳은 일인가? 영화가 끝에 제시하는 답은 분명 영화 초반보다 개선된 것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불안한 미완성의 답은 여전히 <미스터 주>의 노골적인 외면보다 정직하다. 하긴 문제가 없는 척 넘어가는 것보다는 문제를 보여주고 이것이 완벽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토론의 길을 열어두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이리라.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닥터 두리틀><해치지 않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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