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신드롬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은 역사를 새로이 쓰는 중이다. 전작인 <미스트롯>의 학습효과와 합정역에서 불어온 유산슬의 바람을 타면서 시청률, 화제성, 출연자들의 관련 콘텐츠에 대한 관심까지 그야말로 유례없는 트로트 전성시대가 열렸다. 첫 회 시청률 12.5%는 <미스트롯> 1회 시청률 5.9%의 두 배가 넘는 수치며 1대1 데스매치 같은 서바이벌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4회 만에 <미스트롯> 최고 기록인 18.1%를 넘어선 19.4%의 시청률을 올리며 종편 예능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그리고 지난 30일 밤 방송된 5회에선 25.7%라는 역사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전 종편 최고 시청률인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23.8%를 가뿐하게 넘어섰다. 참고로 이 수치는 저녁 8시대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서나 간혹 볼 수 있는, 평일 심야 예능으로선 넘볼 수 없는 꿈의 기록이다.

단순히 시청률만 높은 중장년 대상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도 없다. 4회 방송 직후 오픈한 2차 대국민 응원투표가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300만 표에 육박하는 투표수를 기록할 만큼 흥행 중이고 이른바 화제성 지수는 방송 시작 후 줄곧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대략적인 여론을 알아볼 수 있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 또한 방송 전후로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휩쓸고, 출연자들의 과거 활약했던 <아침마당>과 <전국노래자랑>을 가진 KBS도 덩달아 유튜브에서 적극적으로 노를 젓는 중이다. 지난해 송가인 신드롬이 끝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로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오디션쇼가 그것도 트로트를 소재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결집한 TV조선 채널의 타깃 시청자를 정조준한 점이 도화선이 됐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방송사가 조작을 일삼던 오디션쇼의 노이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리고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가 없던 1020세대를 직격하며 만년 마이너 문화로 머물던 힙합의 생태계를 새로이 창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트로트 시리즈는 가장 큰 TV시청집자 계층이자 소비 집단이지만 늘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소외되었던 중장년층에게 충격을 줬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삶에 와 닿는 콘텐츠를 제대로 제공한 첫 예능이다.

예스런 정서의 노랫말과 삶의 애환을 담은 듯한 옛 곡조, 변두리로 치부되던 장르와 문화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애정 고백은 중장년층이 마음을 열고 이 노래잔치를 즐길 수 있는 바탕이다. 게다가 우리는 유튜브 이용자 중 중장년층이 유독 많은 독특한 환경을 갖고 있지 않은가. 각기각색의 개성과 능력과 매력을 가진 출연자들에 대한 중장년 팬덤의 출현은 방송가는 물론이고 공연계까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트로트 전성시대를 꽃피웠다. 지난해 <미스트롯> 출신 가수들이 열어젖힌 문을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프로젝트를 거치며 울타리가 훨씬 넓어지면서 트로트는 과거 TV예능의 금과옥조였던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엔터테인먼트의 지위를 얻게 됐다.



<미스터트롯>은 이런 흐름에 발맞춰 트로트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거나, 밤무대 성인가요라는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변화했다. 우선 눈살 찌푸리게 한 <미스트롯>의 성상품화와 선정성을 최소화하고 영탁, 임영웅,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등등 출중한 노래실력을 앞세웠다. 그리고 참가자를 다양한 배경으로 분류해 그룹을 지었다. 유소년부, 신동부, 타장르부, 아이돌부, 대학생부, 직장인부, 대디부 등등으로 나눠 중후함부터 영특함까지 감정이입의 요소를 세분화했다. 그렇게 등장한 ‘국민손자’ 정동원, 홍잠원, 임도형 등이 포진한 유소년부는 폭발의 기폭제가 됐다. 이들은 재롱을 넘어선 놀라움을 선사했고, 육아예능에 익숙한 시청자들을 끌어안은 강력한 자석이었다. <미스터트롯> 팬덤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홍잠원, 임도형이 출연하자 <아내의 맛> 시청률도 9%대 치솟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처럼 트로트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문화로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수십 년 전에 이미 검증이 끝난 대형가수들이 줄줄이 출연하는 KBS <가요무대>와는 즐기는 양상이 다르다. 한마디로 놀라고 싶은 기대다. 누가, 또 어떤 재야의 실력자가 노래로 감동을 줄 것인가. 노래가 주는 감동에 긴장감 넘치는 스타 탄생의 스토리가 병행한다. 다양한 캐릭터의 실력자들은 대부분 실력과 꿈이 있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이다. 그런 이들이 인생 쓴맛도 달개 넘기는 한 잔 술처럼 구성지거나 흥이 넘치는 노랫가락으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기대케 한다. 출중한 실력을 바탕으로 더욱 더 성장하는 스토리와 뜻밖의 무대라는 볼거리는 타 장르에 비해 숙성의 미를 강조하는 트로트와 잘 맞아 떨어진다. 여기에 노래 실력에 인간적인 사연과 노력이 결합되니 팬덤은 그저 따라온다.



한때 신동이라 불리었던 이들, 22년 만에 서서히 빛을 보게 된 가수, 현역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가수, 망한 아이돌이란 멍에가 씌워진 젊은 청춘, 기회를 찾지 못한 원석, 좁은 트로트씬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무명의 실력자들 등등 저런 젊은 재능을 어찌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을 노래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트로트의 특성과 발견과 육성의 묘미와 처절한 리얼리티라는 오디션쇼의 매력이 묘한 대구를 이룬다. 인생의 굴곡과 희로애락을 직설적이고 애절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트로트와 오디션쇼의 찰진 조합이다.

끝으로 이 시리즈는 오디션쇼 치고는 특이하게 판정단이 전문가 집단이 아니다. 판정단 11명 중 트로트씬에서 활약하는 이는 조영수, 장윤정, 박현빈뿐이다. 노사연, 김무송, 신지 등 다른 분야 가수, 박명수, 장영란, 붐 등의 예능인, 김준수 등의 아이돌로 구성되어 있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과 큰 괴리 없이 즐기는 판정단은 대중성과 공감대(리액션)를 확보한다.



이처럼 어렵지 않은 접근으로 권위를 어느 정도 해체한 대중성, 새로이 발견된 인물과 독특한 무대라는 볼거리, 노래가 주는 불멸의 감동, 그리고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확장성, 이 네 박자에 맞춰 <미스터트롯>이 트로트 열풍을 이끌며 신명나는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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