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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사이, ‘스토브리그’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기사입력 :[ 2020-02-05 15:12 ]


‘스토브리그’, 일 잘 하는 사람들이 일 잘 하는 판타지
9회를 코앞에 둔 ‘스토브리그’, 그 강점과 약점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2018년 말에서 2019년 초에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있었다면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에는 SBS <스토브리그>가 있다. 야구 소재 드라마가 잘 된 적 없다는 전적이나 5% 대로 출발한 시청률 같은 건 좀처럼 흥행을 점치기 어려운 요소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이 달랐다. 숨 돌릴 틈 없는 스토리전개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온 치밀한 취재, 갈수록 꾸준히 상승해 내려올 줄 모르는 시청률 추세와 화제성까지, <스토브리그>는 한해 전 <스카이 캐슬>이 밟아온 왕도를 착실하게 따라 걸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19년 12월 13일 방영을 시작해 오는 14일 종영 예정이니, 야구로 치면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달리며 8회까지 마치고 이제 9회를 남겨두고 있는 시점이다. 그래도 야구는 9회 말 부터라고, 혹시라도 안도하고 있다가 대량 실점을 하면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진작부터 <스토브리그>를 알아보고 주변에 전도하고 다녔던 정석희, 김선영 평론가와, 롯데를 응원하는 일이 너무 힘에 겨워 야구를 끊은 지 10년이 되어가는 탓에 <스토브리그>를 애써 피해 다니다가 끝내 치이고 만 이승한 평론가가 <스토브리그>의 전력 분석에 나섰다.

먼저 김선영 평론가는 <스토브리그>가 왜 이렇게 폭넓은 열광을 이끌어내는지를 큰 틀에서 분석했다. ‘꿈의 성장 서사’라는 허상 뒤에 감춰져 있던 노동착취나 불합리한 관행 따위의 진실을 폭로하고 새롭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스토브리그>의 주제의식이 시대정신과 공명했다는 분석이다. 이승한 평론가는 조금 더 초점을 좁혀 들어갔다. 작품이 의외로 빈틈이 많은데,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남궁민이 지닌 아우라라는 평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스토브리그>의 취약점인 ‘개인사’ 파트를 짚는다.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이세영(박은빈)과 어머니(윤복인)의 대화 장면이나, 끝없는 신파로 가득 찬 백승수(남궁민)의 개인사가 작품의 완성도를 갉아먹는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마지막 회를 무사히 이끌어 가기 위한 9회 전 전력분석이다.



◆ 꿈과 열정 뒤에 은폐된 것들

<스토브리그>는 팬들 사이에서 ‘야구 사극’, ‘KBO 사극’ 등으로 불린다. 충실한 취재와 자문을 거친 사실감 넘치는 재현은 이 작품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요인이다. 단순히 프로야구계의 현실과 얼마나 겹쳐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토브리그>의 현실 인식이 스포츠드라마뿐 아니라 꿈과 열정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온 모든 성장담 류 이야기의 허상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꼴찌팀 구단명이 ‘드림즈’인 것은 너무도 적절하다. 모기업의 외면으로 인한 부족한 운영 예산, 낙후된 시설,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들, 성장이 멈춘 신인들 등 드림즈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사실 보는 이들의 응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형적인 설정이다. 많은 언더독 서사가 이 같은 약자들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각성하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값진 결실을 얻어내는 과정을 그린다.



<스토브리그>도 분명 언더독 서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그러한 서사에서 꿈, 열정, 믿음 등 감성적 언어로 포장해왔던 성장 동력의 문제점 또한 짚어낸다. 드림즈가 약팀인 이유는 명칭에 걸맞는 꿈과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합리한 시스템과 이에 눈 감는 관성에 있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는 영웅적 리더가 한 조직을 변화시켜 승리를 향해 가는 판타지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근원적 구조를 성찰하는 현실 비판물의 성격을 함께 지니게 된다.

지난해 CJ의 오디션 조작 사태가 ‘꿈의 성장 서사’의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면, 올해 초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인기는 우리 사회가 그 서사 뒤에 은폐됐던 현실을 돌아보고 다시금 정직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길 바라는 열망을 보여준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스토리의 빈틈을 메워주는 ‘일잘알’ 남궁민의 아우라

<스토브리그>는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대신 준비만 마냥 반복하고 있는 ‘준비생’ 인생을 사는 수많은 동시대인들에게 ‘당신도 지금 당신만의 스토브리그를 살고 있는 것’이라 말해주는 듯한 언더독 서사는 탁월하고, 부조리한 관행을 부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세우자는 목소리 또한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는 이를 친절하게 인도하는 스토리텔링 구조도 탁월하지만, 야구를 알면 알수록 “맞아, 우리 팀도 저 때 저런 일 있었지”라며 몰입하게 만드는 디테일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특히나 ‘지방 팀이라 이동 거리가 길고 프런트가 무능하며 모기업의 지원이 적은 탓에 몇 년치 순위를 기록한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대목쯤 가면, 오랜 롯데 팬 입장에선 끊임없이 뼈를 맞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스토브리그> 또한 스토리텔링의 많은 부분을 우연과 운에 기대고 있다. 백승수(남궁민)가 드림즈에서 임동규(조한선)를 내보내는 과정은 마침 세이버스와 가을 야구에서 강세를 보여줄 거포를 필요로 하는 바이킹스의 사정, 마침 강두기(하도권)라는 드림즈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데 18승 투수를 내보내도 투수진에 빈 틈이 안 생길 만큼 탄탄한 바이킹스의 투수진과 같은 조건들이 딱딱 들어 맞아준다.

적은 예산으로 용병을 구해와야 하는 일정에는 현지 코디네이터로 때마침 전성기 구위를 회복한 길창주(이용우)가 붙어준다. 어떻게든 드림즈를 해체시키려는 구단주 대행 권경민(오정세)이 약물 파동을 이용하려고 달려들어 보지만, 공교롭게도 드림즈만 약물을 사용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 백승수가 이끄는 개혁와 시스템 구축의 드라마는 짜릿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운이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스토브리그>가 유능한 ‘일잘알’들이 모여 일을 잘 하는 드라마처럼 보이는 것은 상당부분 남궁민의 공이다. 이미 KBS <김과장>과 <닥터 프리즈너>를 통해 남궁민은 명실공히 한국에서 ‘일 잘 하는 사람’ 연기를 가장 잘 하는 배우의 경지에 올랐다. 그런 남궁민의 아우라가 아니었다면, 스토리전개의 편의를 위해 <스토브리그>가 촘촘히 배치해 둔 수많은 행운의 연속은 진작 지적당했을 것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야구는 홈런, 가족사는 루킹 삼진

한동안 <스토브리그> 전도사 노릇을 자처해왔지만 이번엔 아쉬운 점을 얘기해보련다. 우선 자주 등장하는 드림즈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과 어머니 정미숙(윤복인)의 대화 장면. 마치 연극 무대처럼 늘 식탁이나 거실 소파 위에서 티격태격 얘기를 주고받는데 겉으론 현실 모녀이나 대화 내용은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사고의 흐름을 정미숙의 입을 통해 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영이네 집이 나오면 이제 또 어머니가 선무당 모양 화두를 던지겠거니 하게 된다. 동네 고스톱 판에서 유난히 규칙을 강조한다거나 과거 쥐잡기 운동을 언급하며 편법을 쓰면 다 망하는 법이라고 말한다거나, 정미숙이 툭툭 던지는 말대로 사건이 마무리된다. 모녀간의 대화가 번번이 이런 식으로 활용되기에 이세영의 사고 또한 가지치기를 못하고 어머니 시점에서 멈춰버린다. 이세영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오매불망 야구 밖에 모르는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백승수 단장(남궁민)의 개인사가 펼쳐지는 순간 신파조가 되어버린 걸 보면서 이세영의 일상이 야구에 묶여 있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 부인 정인(김정화)과 동생 영수(윤선우)가 겪은 불행이 다 자신의 탓이라 여기는 백승수. 지난 과거를 백승수 덕에 해결하고 국내 프로야구로 복귀한 길창주(이용우) 선수의 집을 방문했던 장면은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으리라. 어떤 아기 엄마가 아무리 평생의 은인이라 해도 추운 밤 갓난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올 것이며 난데없이 손님에게 아기를 안아보라 권하겠는가. 속내를 감춘 냉혈 단장 백승수와 열정으로 뭉친 운영팀장 이세영, 더 나아가 드림스 사장이 된 권경민(오정세)까지, 워낙 현실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연기자들인지라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일상은 과감히 접은 채 그저 야구 얘기만 집중하는 편이 옳지 싶다. 아쉽지만 그 편이 낫겠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S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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