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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 그토록 기다린 김찬우를 이리도 허무하게 소비하다니
기사입력 :[ 2020-02-06 16:05 ]


‘불타는 청춘’의 외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태웠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불타는 청춘>이 외전 ‘외불러’를 3주간 편성했다. 1960~70년대생 기존 출연자 대신 1996년생의 정승환, 1989년생 에일리 등 젊은 실력파 가수와 종횡무진 방송가를 누리는 유부남 박준형과 함께 늘 <불타는 청춘>에서 보고 싶은 친구로 꼽히던 김찬우가 새 친구로 등장하고, 기존 불청 가족 중에는 김도균과 김혜림이 참여했다. 이들이 기존 불청 멤버들처럼 호스트가 되어 우리의 옛 가요를 좋아하는 젊은 외국인 친구들을 시골 마을로 초대해 그들의 노래와 음악 실력, 그리고 한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간 <불청>이 기존 여행 루틴을 벗어나 ‘싱글송글 노래자랑’, ‘보글짜글 청춘의 밥상’, ‘불청 200회 기념 콘서트’ ‘내시경밴드 특집’ 등등의 이벤트를 종종 하는 편이었으나 스스로 ‘외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기존 코어 출연진들을 배제하고 무려 3주간 편성한 것은 굉장한 용기다. 물론 시청률에 변동이 없었으니 성공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획에 <불청>의 스핀오프라는 포장을 입힌 것이다. 같은 제작진이란 것은 내부 사정이고, 그간 이 시간에 <불청>을 시청하던 입장에서는 3주간 결방한 것과 다름없다. 세계관과 정체성 측면에서 외전이라기보다 새 프로그램이나 파일럿이라 보는 편이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하룻밤 자면서 음식 해먹는 예능이 <불청>만의 아이덴티티라고 보긴 어렵고, 추억의 7080가요가 끊임없이 노래로, BGM으로 나오지만 <불청>이 복고예능은 아니다. 이외의 연결고리는 김혜림, 김도균 두 출연자밖에 없다. ‘불청스럽다’는 5년간 방송과 시청자들이 함께 쌓아온 역사이자 울타리다. 그런데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실험으로 시청자들과 함께 쌓은 공감대를 부순 셈이다.

<불청>이 다른 예능과 달리 하나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처럼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청춘’의 조건에 있다. 40대 이상의 싱글이며, 과거 짧게나마 전성기를 누렸지만 최근 방송에서 사라진 반가운 얼굴들. 그래서 출연자 중 송은이 정도만 제외하면 <불청>밖에서도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는 예능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인생의 굴곡을 맛보고 일과 삶을 어느 정도 관조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 커뮤니티는 ‘방송을 하는’ 예능과는 다른 리얼리티와 정감이 있었다. 이것이 다른 예능과는 완벽하게 차별지어지는 울타리이며 시청자들까지 공유하는 가족적 관계가 형성된 이유다.



<불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란 독점적 볼거리,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맛, 나이를 먹어도 동년배들끼리 모여 있으면 20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감수성과 에너지는 보다 어린 세대에게 일종의 위로이기도 했다. 그런데 ‘외불러’의 기획에는 이런 기존 <불청> 세계관과의 연결고리가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외불러’는 <불청>의 이름만 빌려온 사실상 외전이라기보다 새 기획 혹은 파일럿이라고 보는 편이 가깝다. 2부에서는 모든 요리와 살림을 도맡은 김찬우가 메인이긴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의 옛 가요 사랑과 음악회라는 메인 콘셉트와 거리가 있다. 이런 모습은 지난 1부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새 친구’ 임에도 스포트라이트와 배려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뒤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맞이하는 입장이 됐다.

예능에서 세계관 확장의 가능성을 가장 활발히 선보인 <무한도전>도, ‘모자란 이들의 도전’이란 콘셉트나, 캐릭터쇼 같은 명확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장르와 소재를 확장했다. 그러나 이 외전은 <불청>만의 청춘이란 콘셉트, 지난 5년간 쌓아온 가족주의라는 세계관을 떠나서 전혀 다른 이야기, 세계, 볼거리가 펼쳐진다. 기획 자체의 재미나 문제가 아니라 외전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을 고민해봤어야 할 문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살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좋아하는 재능 넘치는 외국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선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예능 장르가 존재하고, 관심이 있다면 따로 기획을 해서 프로그램을 런칭할 일이지, <불청>의 티켓파워를 활용하고, 오랫동안 시청자들이 기다려온 대형 게스트를 내세워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것은 피차 예의가 아니다.

<불청>의 스핀오프라면 최소한의 세계관은 공유해야 한다. <스타워즈>의 그 수많은 외전들이 아무리 특이해도 우주SF라는 배경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외불러’가 <불청>의 어떤 확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김찬우라는 대형 게스트를 반가운 ‘새 친구’로 불렀다는 대대적인 프로모션이 기존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사는 이유다.



최근 트로트 열풍의 영향일까. 젊은 세대가 과거 문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문화를 공유하는 일이 흔해졌다. 하지만 외국인 예능 코드를 <불청>에서 소화 못할 것도 아니고, <불청>에 가수나 무대를 만들 만한 인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기존 정체성을 버리고 음악회를 연다는 설정이 <불청>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것은 이해받기 힘든 기획이다. 모든 예능 중 가장 독자적인 울타리 안에서 특별한 연대를 형성하던 시청자들에겐 일방적으로 느껴지는 하나의 상처가 됐다. 시청률이 전부가 아니란 말은 가끔 사실이기도 하다. 함께해온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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