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기술이 감각이 아닌 마음에 닿을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많이 놀자. 나도 엄마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나연이의 그런 목소리를 엄마는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엄마는 꾹꾹 눌러놨던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나연아 엄마는 나연이 정말 사랑해. 나연이가 어디에 있든 엄마 나연이 찾으러 갈 거야. 엄마는 아직 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것들 다 마치고 나면 나연이한테 갈게. 그 때 그 때 우리 잘 지내자. 사랑해 나연아.” 아이는 졸립다며 옆에 있어 달라 말했고 엄마에게 사랑한다며 잠이 들었다.

MBC 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나연이 엄마 장지성씨는 그렇게 다시 나연이를 만났고 또 보냈다. 그건 마치 잠시 동안의 ‘호접몽’ 같았다. VR 기술로 재현된 나연이의 목소리와 동작들이 엄마와 그 가족들에게 선사한 작은 선물이었다. 나비의 형상으로 나타났던 나연이는 엄마와 손을 포개면서 함께 하늘 위로 올라갔고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 나연이와 잠깐 동안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어찌 VR 기술로 재현된 영상 속 나연이가 진짜 나연이와 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엄마의 촉촉이 젖은 눈은 그 경험이 특별했다는 걸 말해줬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장지성씨는 “네”라고 답했다. 그는 나연이와 그 VR 속 아이가 다른 느낌이었지만 멀리 가면 또 나연이 같았다고 했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아이를 다시 만나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으로 채워졌을 게다.

4년 전 열 때문에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나연이. 사랑했던 딸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린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는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나연이가 살아있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갔어도 여전히 핸드폰 속 영상 속에서 노래하고 웃고 뛰어다니는 나연이였다.



<너를 만났다>가 VR로 나연이를 재현해내면서 고민한 건 사람이 누군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평상시 미역국을 좋아해서 그릇째 마신 후 엄지로 따봉을 보냈던 나연이의 모습이나, 귀엽게 얼굴 옆으로 브이 포즈를 했던 모습, 뛰어다닐 때의 걸음걸이나 양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하며 포즈를 취하던 나연이의 모습 등등. 그런 작은 것들이 나연이라는 존재에 담긴 기억들이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나연이는 살아있었다. 나연이의 VR을 반대했던 오빠 재우는 짐짓 씩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지만 너무나 착하고 항상 웃었으며 자기랑 가장 친했던 나연이를 생각하면 슬퍼진다고 했다. 단 하루도 생각 안 한 적이 없다고. 둘째 민서는 나연이에게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고 얘기하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나연이가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나연이가 마지막 순간에 병동에서 입었던 옷과 나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태웠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가 널 꽉 붙들고 있어서 네가 혹시나 힘들까 걱정하면서도 엄마 살자고 붙들고 놓지 못한 거 미안해. 언니, 오빠, 소정이 모두 다 건강하게 잘 키우고 나연이만 바라볼 수 있을 때 너에게 갈게.” 엄마는 나연이에게 하고픈 말들이 많았다.

VR로 다시 만나는 스튜디오에서 “나연아 어딨니”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카메라를 드리우고 있던 제작진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VR이라는 기술을 통한 재현이지만 이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의 마음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속에서 아이를 다시 보고 못 다한 말들을 했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경험을 통해 엄마도 나연이도 또 가족들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청자들이나 제작진이 다 같았을 게다.



흔히 VR이라고 하면 감각에 호소하는 기술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실감 영상과 그로 인한 짜릿한 감각 체험이 VR이라 치부하지만, <너를 만났다>는 그것이 하나의 선입견이자 편견이라는 걸 보여줬다. 결국 기술도 어떤 쪽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기술이 감각이 아닌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이 VR과 휴먼다큐를 접목시킨 프로그램은 나연이네 가족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기술도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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