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가사에요. 최대한 부모님들의 애틋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그런 느낌으로 불러보고 싶은데 저는 아직도 부족한 인간이라 이 곡을 부르면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담아보려고 노력할 거예요. 명절이라 그런지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네요.”

- MBC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박완규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MBC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지난 주 경연 무대에 오른 박완규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마지막 소절을 들려주는 순간, 어느새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에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노래를 듣다가 울다니! 남들에겐 흔히 있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거기에 내 설움을 슬쩍 얹어 함께 운적은 있다. 그러나 음악을, 그것도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운적은 이번이 난생 처음이다.

매사 지나칠 정도로 무덤덤한 나. 그래서 사실 ‘청중평가단’이 눈물짓는 모습이 간혹 카메라에 잡힐 때면 어떻게 저런 완벽한 몰입이 가능할 수 있는지 신기해하며 바라봤다. 또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같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을 받아 놓고는 누군 감동어린 맛이라며 감탄사를 내뱉는 마당에 나는 마치 미각을 잃은 장금이 모양 멀뚱멀뚱 구경이나 하고 앉아있는 셈이 아닌가. 취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런 감정을 한번쯤은 느끼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박완규가 부모님을 생각하며 불렀다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하더니만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에 이르자 급기야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뭔가.

그는 명절이면 늘 빈 주머니여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던 지난날의 불효를 되새기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듣는 동안 나 역시 일찍이 타계하신 양가 아버님과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도 했고 홀로 남으신 어머님들의 외로움에 새삼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큰둥하며 지내는 남편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혼자 남을, 아니면 먼저 떠나야 할 내 처지가 막연한 서러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을 연신 닦아가며 ‘청중평가단과 이렇게 혼연일치가 되긴 처음이야!’ 하며 흡족해했는데 이게 웬 일, 그만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훈훈했던 가슴은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양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한 마디로 말해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랄까?








“이 노래는 가사가 그렇게 좋은데, 가사 전달에 실패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템포가 너무 빠르다 보니 다 씹지도 못하고 삼키는 것 같은.” 바로 이어진 자문위원 김현철의 평가다. 박완규가 가사 전달에 실패한 것 같다고? 그렇다면 온전히 몰두해 가사 하나하나에 빠져들었던 내 감정은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옳은가? 원곡에 비해 가사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일진데 김목경의 원곡 음반을 소지하고 있고 오래 전부터 자주 들어온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원곡이 쓸쓸하면서도 담백했다면 박완규가 부른 이번 곡에는 회한과 애절한 여운이 담겨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살아온 삶이 다르고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니 달리 표현이 될 밖에. 그러나 자문위원의 평가며 소감이 나와 판이하다 하여 불쾌해할 이유는 없다. 사람의 취향과 입맛이야 천차만별, 서로 다른 법이니까. 다만 과일을 한 입 베어 물고 눈을 반짝이며 맛있다는 사람을 보고 그 즉시 ‘난 별론데?’하며 받아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건 자문위원의 잘못이 아닌, 편집의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뒤를 이었던 ‘시골 냄새나는 시도가 매력적이었다’거나 ‘가사에 몰입해서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이 좋았다’는 다른 자문위원의 평가들이 순서를 바꿔 먼저 나왔다면 훨씬 부드럽지 않았을까? 환호도 많고 질타도 많은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이런저런 애로가 끊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제작진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집에서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이 아닐는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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