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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부·백단장·박사장, 이 걸출한 영웅들에게 빠져드는 까닭
기사입력 :[ 2020-02-12 13:43 ]


소신을 갖고 살아가도 되는 드라마 세상, 꿈이 아니길 바란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0년은 복되게도 연초부터 완성도 높고 재밌는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가 TV의 위기를 말하고, 지팡파는 미니시리즈 편성 자체를 없애기도 하는 등 이런저런 수모를 겪던 TV드라마 시장에 모처럼 열린 전성시대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수도권 시청률은 18.2%, 전국 시청률 16.8%),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수도권 시청률 21.8%, 전국 시청률 20.8%),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수도권 시청률 16.4%, 전국 시청률 15.9%),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수도권 시청률 10.7%, 전국 시청률 9.4%) 등등 높은 시청률과 호평을 동시에 받는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다양하게 방영중이고 모두 2049시청률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저녁 있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드라마의 주요 캐릭터가 갖는 경향성이다. 멜로라인을 앞세운 <사랑의 불시착>을 제외하고 주인공들은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JTBC <송곳>의 한 대사처럼 주머니 속 송곳처럼 툭 튀어나오는 사람들이다. 텁텁한 현실에 주눅 들거나 순응하면서 살아가기보다 소신에 맞게 맞서고, 찌르고, 더 나아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책임을 질 줄 알며 더 나은 삶과 세상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는 리더다. 대충 눈 감고, 적당히 굽히고, 일단 ‘나만 아니면 돼’를 되뇌며 웬만하면 나서지 말고, 가능하면 시류에 적당히 편승해 살아가는 순응을 현명함이라 가르치고 체득하는 우리 현실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종의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이다.



이제 마지막 회만을 남겨두고 있는 <스토브리그>는 야구인이 아닌 백승수(남궁민)가 틈만 나면 해체만을 생각하는 만년 꼴찌 야구팀 ‘드림즈’의 신임 단장이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스포츠 드라마 겸 오피스 드라마다. 극중 백승수는 인간미가 다소 없고, 돌려 말할 줄 몰라 원성을 사긴 하지만 정확한 진맥과 처방, 몇 수 높은 기묘한 해결 방식으로 30년간 있었던 프로야구의 온갖 구설수와 문제를 압축해놓은 ‘드림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적폐와 루징 마인드를 걷어내고 우승이란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책임지고 끌고 간다.

사실 편한 상사는 아니다. 트레이드부터 전지훈련 대안마련까지 구단 업무 전반에 관한 회의 자료를 본인이 직접 완벽하게 만들어서 실무자들을 설득하니 엄청나게 부담스런 스타일이다. 하지만 현실이란 변명 속에 관성에 젖어있는 조직원들에게 “핑계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라고 충고하며 삶의 가치와 지향을 제시한다. “말 잘 들어봤자 달라지는 것 없다”며, “불의나 부당한 지시에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저항을 하길 바란다”고 말하고 그러면서 조직원들 마음속 불씨가 스스로 지펴지길 기다릴 줄도 안다. 말투와 매너보단 ‘변명이 곧 현재의 자기 자신이 된다’는 자기계발적 메시지를 업무 능력으로 보여주고 따르게 만든다.



신임 단장이라 볼 수 없는 능수능란하고 신출귀몰한 그래서 ‘요사스런 입’이라 불리기도 하는 엄청난 능력의 근원이 바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 모래알 같던 프런트와 선수 및 코칭 스텝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관성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리더십이다.

3년 만에 돌아온 김사부(한석규)는 보다 만화적인 캐릭터다. 일단 아직도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 국내에 견줄 자 없는 천재 의사가 비즈니스 마인드로 병원을 운영하는 본원에 맞서 시골 병원에 은둔하면서 최고급 의술을 펼친다는 설정 자체도 진짜 낭만적이다. 게다가 사회성도 심히 떨어져 보인다. 괴팍하고 때론 거칠기도 하다.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의사의 본분과는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심히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서우진(안효섭 분)과 차은채(이성경 분) 등 주류 세력의 관점에서 부족함이 있는 젊은 후배 의사들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회를 제공한다. 그 선택에 기꺼이 책임을 진다. 어려운 일일수록 솔선수범하고 자신의 안위보다는 대의를 생각하는 김사부의 어른스러움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낭만, 판타지 그 자체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한데 멜로라인을 다른 캐릭터들에게 맡기다보니 김사부의 직선적 매력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사람 생명에 대한 과도할 만큼 집착하는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진 김사부는 영리를 추구하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해보면 애틋한 존재다. 특히 김사부의 모델로 알려진 이국종 교수가 소신행보를 보이다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뉴스와 오버랩되면서 판타지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사부’를 자처하면서 군림하지 않고 솔선수범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뜰하게 아끼고, 늘 답을 제시해주는 김사부 같은 진정한 스승 같은 인물이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대리충족의 욕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최근 시작한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박서준)는 웹툰 원작 속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왔다.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을 그린 작품이란 설명 그대로다. 박새로이는 아버지가 정해준 가훈 ‘소신 있게 살자’를 삶의 기준으로 정하고 살면서 인생이 심하게 꼬인 케이스다. 물론 몇 차례의 타협 기회가 있었으나 언제나 소신을 택하고, 남들이 봤을 때 나락에 빠졌다. 허나 15년짜리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과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국내 최대 요식업 기업 ‘장가’에 맞서기 위해 이태원에 포차를 차리고 자신을 따르는 직원들과 꿈을 펼친다.

박서준은 “박새로이는 소신이 뚜렷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단단한 인물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그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누구보다 힘든 상황을 견뎌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낮은 자존감이 문제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매력 포인트다. 단단한 심지, 뚝심 있는 캐릭터라서 계산해서 선택하지 않고, 현재가 어떤 바닥이든 자기 자신을 위한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그렇게 발생하는 불이익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한다.



여기서 남 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미성년자임에도 알고 손님을 받아 영업정지를 당해도 미성년자들은 책임을 질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성년자라며 보호해주고, 이들을 받아주고 자책하는 알바 후배에게는 “지나간 일이야. 돌이킬 수 없어. 영업 정지 2개월, 부족한 걸 메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며 독려한다. 10년 넘게 짝사랑한 첫사랑이 신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도 당황할 뿐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소신과 원칙과 기준을 중시하면서 꿈을 좇는 삶의 궤적이 주변을 감동시키고 따르게 만드는 케이스다.

이 세 주인공 캐릭터들이 갖는 공통점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달달한 연애의 설렘보다 중한 것들이 분명 있다. 그 기대에는 의지하고 싶은 어른의 존재, 정의롭지 못한 비합리와 부조리를 따지는 통쾌함, 그럼에도 대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깃들어 재미로 승화된다.



민주사회에서 특출 난 영웅,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가장 단순하고 저차원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가장 폭발력 있는 접근법이다. 이 판타지들이 열렬히 유통되는 분위기를 통해 우리 사회를 뒤집어 엿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요즘 대중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십의 요소는 무엇이고 그 근간을 이루는 가치와 지향은 무엇일까. 소재도 다르고, 장르도 다른데 메시지의 스펙트럼이 겹치고, 삶의 지향에 관한 자기계발적 메시지가 멜로라인보다도 더 주요한 스토리라인을 형성한다.

소신을 지키는 이들이 밀려나는 현실 세계에 홀연히 나타난 주인공들은 세상이 흘러가는 흐름을 바꾸고 믿음을 새롭게 정의한다. 소신을 지키는 과정에서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를 극복해내는 데서 쾌감을 선사한다. 불합리, 즉 적폐를 요리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의구현이란 보편적 정서에, 우리의 정치, 사회적 경험이 더해지고, 의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삶의 가치와 올바름의 기준이 달라진 시대정신의 작용이라 볼 수 있다. 그 흐름의 물결이 드라마를 통해 반짝이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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