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예능의 진한 아쉬움에 대하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바야흐로 트로트의 시대다. 매주 목요일에는 <미스트롯>를 발구름판 삼은 <미스터트롯>이 연일 시청률 신기록을 경신하며 TV예능의 새 역사를 매회 쓰는 중이고, 트로트 신인가수 유산슬 열풍은 신규 히트작이 끊겼던 국민MC 유재석의 위상을 단숨에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지난해는 송가인을 필두로 수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예능을 휘젓고 다녔고, 올해는 아예 KNN , MBN <트로트퀸>, MBC 에브리원 <나는 트로트가수다> 등 시류를 더욱 굳건히 다질 트로트 예능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하나의 콘텐츠가 이렇게 대세가 된 것도, 그 영향으로 새로운 스타들과 프로그램이 대거 탄생한 것도 2015년 쿡방과 스타셰프의 열풍 이후 오래간만의 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트로트 가수다>와 <트로트퀸>는 수요일밤 앞뒤로 나란히 편성됐다. 이덕화가 오랜만에 MC를 맡은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나는 가수다>의 트로트 버전이다. <나는 가수다>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명절 특집으로 편성했던 동명의 특집 방송을 아예 정규화했다. 조항조, 김용임, 금잔디, 박구윤, 박혜신, 조정민, 박서진 등 방송보다는 주로 업계에서 활약하는 가수들이 신구의 조화를 이룬다. <나는 가수다>의 ‘로열럼블 룰’로 진행되는 까닭에 첫 탈락자 자리에는 ‘천태만상’의 윤수현이 합류할 예정이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트로트계의 보석을 재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아침마당> 출신의 박서진이나, <불타는 청춘> 식구인 금잔디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TV에서 활약한 인물은 없지만 출중한 실력과 세월로 쌓은 탄탄한 내공과 브랜드를 가진 중견급 가수들의 출연과 대결이란 키워드가 기획의 중추다. 단련된 무대매너와 가창력은 트로트의 흥과 가창력으로 감동을 주고 조항조, 김용임 등 오랜 세월 활동한 가수들의 대결은 서바이벌의 긴장을 자아낸다. 하지만 특별함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이끌고 나갈 신선한 인물이 딱히 잡히지 않으면서, 화제성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보니 출연자의 성장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오디션 쇼의 스토리라인에 비해선 확실히 밋밋하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하는 <트로트퀸>은 MBN 시청률 관련 기록을 싹 다 갈아치운 <보이스퀸>의 4부작 스핀오프 프로그램이다. 김양, 우현정, 이승연 등 <미스트롯> 출연자를 트로트팀, <보이스퀸>에 트로트로 참가한 이미리, 박연희, 최연화, 조엘라 등을 보이스팀으로 각각 10명씩 나눠 샴푸나 홍삼 세트 같은 소소한 선물을 걸고 단체전을 벌인다. 승부와 경쟁코드를 내세우긴 했지만 겉만 그럴 뿐, 지난 2개월간 앞만 보고 달려온 치열했던 경연의 갈라쇼라 할 수 있다. 대결과 생존의 긴장감이 사라진 자리를 벨리댄서들을 동원한 박상철의 축하무대, 지상렬, 윤정수의 스페셜 무대, 국악, 팝송 등을 내세운 출연자들의 스페셜 무대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결 방식에서의 흥미, 누군가 새로운 재능을 만난다는 기대, 승부의 긴장감 등 오디션쇼의 흥미 요인들이 대거 빠져 있다. 애초에 대결의 의미가 별로 없는데다, 트윙클이라 불리는 연예인 심사위원단의 심사가 한 표씩 개표되는 진행방식이 계속 반복되고 평가도 전문적이지 않고 기술적인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반가운 얼굴들의 노래는 즐겁지만 ‘더 큰 길로 갈 수 있도록 힘찬 박수가 필요합니다.’는 태진아의 말이나, ‘노래로 하나 되는 겁니다’는 MC 김용만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치열한 생존의 승부, 재능과 곡의 발견 보다는 즐기는 재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래서 치열한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디션쇼는 경쟁과 서바이벌이란 설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재미 요소고 <가요무대>는 관록 있는 베테랑들의 노래를 즐기는 프로페셔널한 무대라면 <트로트퀸>은 그 중간 어딘가 어중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출연자 모두가 한 무대에 나와 있는 가운데 노래 대결을 하다 보니 구성상 밋밋하고, 선수들 캐릭터를 엿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만약 <보이스퀸>을 보지 않았거나 <미스트롯>을 놓친 시청자라면 흥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트로트 붐이 봄을 맞은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몇 해 전부터 불고 있는 레트로 열풍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수요일에 편성된 두 트로트 프로그램의 함량은 다소 아쉽다. 오롯이 노래를 즐기는 데 있어 급조된 프로그램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방해가 된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유산슬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트로트 그 자체뿐 아니라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트로트 자체가 아닌 오디션쇼, 성장스토리이기에 폭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요일의 두 트로트 예능은 좌표를 그리자면 <가요무대>에 가깝다. 모처럼 분 트로트 열풍 덕에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던 가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열렸다. 이 기회를 보다 많은 사람이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타이밍만큼이나 기획도 중요하다. 우리 가요를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이 흐름을 잘 살려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에브리원,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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