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통해 새삼 확인한 김태호PD와 유재석의 진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기세가 뜨겁다. 유산슬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트로트 붐과 만나 상승한 기류는 뜻하지 않은 도전과 뜻밖의 장소에 유재석을 불시착시키며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을 가지면서 두 자릿수 시청률에서 내려왔지만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기대가 쌓이고 있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면 10%대 재진입은 물론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을 무난히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여름 김태호 PD가 복귀하면서 시작된 <놀면 뭐하니?>의 초창기는 옴니버스식 구성과 릴레이 카메라라는 다소 파격적인 실험의 장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예능의 위기, 아니 TV콘텐츠의 위기를 논하고 유튜브의 약진을 주목하고 있을 때 그간 쌓아온 인지도와 친근감을 활용하는 가장 TV예능다운 방식으로 다시금 정상의 자리로 올랐다.



자신의 의지와 위치와 상관없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섰지만, 낮은 자세로 최선과 열정을 다하는 진정성과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라는 결과물을 내놓은 유산슬은 가장 <무한도전>다운 방식과 성장스토리였다.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좋았던 기억을 다시금 꺼내들었지만 아무도 반복이라 하지 않고 열광했다. 그 결과 두 자릿수 시청률을 달성했으며, 지난 몇 년간 불편한 지적도 따랐던 국민MC 유재석의 캐릭터를 쇄신했다.

유산슬 프로젝트 이전 펼쳐진 <놀면 뭐하니?>의 몇 가지 시도에는 기존과 다른 무엇, 즉 새로운 콘텐츠를 원하는 시대적 요구, 재미의 개념, 트렌드의 변화에 대한 예능 제작자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시청률 10%를 넘어선 순간 유재석과 김태호 PD는 이런 고민 대신 그동안 쌓아온 자신들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발휘해 방송사와 프로그램의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타방송사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기피하던 방송가에서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산슬 프로젝트 이후 이어진 라면 프로젝트에서 케이블 채널의 <맛있는 녀석들>과의 콜라보, EBS에서는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하고 펭수와의 만남을 가졌다. 김구라부터 이효리까지 초대 손님들도 유재석이기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무한도전> 후속으로 볼 수 있는 이 시간에, <런닝맨>의 지석진, 이광수를 불렀다. 가장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포상 휴가 멤버들로 유재석이 지목한 이들이 지석진, 이광수, 그리고 조세호였기 때문이다. 타방송이 연상되는 캐스팅은 일반적으로 피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자리에 함께한 조세호의 솔직해지겠다는 신년다짐처럼 새로운 관계망의 가능성을 진솔하게 보여준 꽤나 의미심장한 캐스팅이었다.

유산슬로 떴지만 거기에 천착하지 않고 자체적 시즌제에 가까운 프로젝트별 호흡 고르기를 하는 것은, 빠르고 적극적인 시도를 통해 리스크를 초기에 직면하고, 다시 새로운 시도로 이어가는 벤처식 전략이자 성장스토리 일변화로 몰락한 리얼버라이어티 방식의 개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토대는 방송으로 사랑받고 성장한 유재석의 존재다. <놀면 뭐하니?>는 선을 넘나드는 자극적인 유튜브 스타일의 예능 문법 대신, 누구나 모시고 싶어하는 유재석의 존재감을 끌어다가 기존 방송 문법의 경계를 허무는 데서 재미를 만들고 있다.



‘유재석의 급’과 ‘해당 프로그램의 성격과 급’의 격차에서 발생시키는 웃음과 신선함은 과거 하나마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거리로, 시민들 곁으로, 본격적으로 다가가면서 캐릭터쇼와 성장스토리가 새롭게 시작된 <무한도전>이 만들었던 흐름과 비슷하다. 그때는 시청자들의 일상 공간과 저 멀리 가상의 세계처럼 여겨졌던 방송 사이의 정서적 문턱을 없앴다면 이번엔 방송국간의 경계선과 프로그램 간의 울타리를 낮추며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유재석이고 김태호 PD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막을 통해 ‘부캐(부캐릭터)’와 ‘본캐(본캐릭터)’에 대한 과할 정도의 정리와 언급은 친절한 설명이면서 무의식의 발로에 가깝다. 이런 나름의 역할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등장한 UV나 신인 걸그룹 콘셉트의 셀럽파이브처럼 이미 우리 방송가에 없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국민MC 유재석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브레히트식 효과를 자아낸다. 유산슬과 유재석을 헷갈릴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집어주는 것은 국민MC 유재석은 그대로 두고, 그를 둘러싼 환경을 새롭게 설정해 유재석의 캐릭터를 재정립하고 있음을 중간 중간 일깨워주는 장치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의 방점은 트로트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예능에 찍혀 있다. 예능의 중흥을 이끌어낸 바 있는 유재석과 김태호 PD는 활발한 매체 경쟁의 시대에 완벽한 새로움이 아닌 기존의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에서 길을 찾았다. 유튜브 스타일을 접목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대신 방송으로 쌓아온 영향력과 방송의 힘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이른바 ‘클래스’를 발휘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은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홀가분해 보이지만 TV스타로 국민MC의 자리에 선 유재석이기에 가능한 시도를 강조하고 캐릭터를 조명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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