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사회생활’은 유아 예능이 아닌 원초적 인간에 대한 보고서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어쩌면 저렇게 어른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을까! tvN 예능 <나의 첫 사회생활>을 보는 이들은 탄성을 멈추지 못한다. 어린이집에서 초면의 친구들을 만나 조심스레 면을 트기 시작한 어린이들은, 빠른 속도로 무리를 짓고 자기들끼리의 서열을 정하고 누군가를 따돌렸다가 사과하고 화해하고 경쟁하고 싸우는 일들을 해치운다. 어린이들의 잔인함은 어른의 잔인함과는 또 달라서 거침없이 직설적이지만, 그 양상 자체는 어른들이 구축한 사회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든다.



세상에, 아이들도 저러고 사는구나. 피곤하겠네. 어린이들의 삶을 전에 없이 솔직하고 적나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의 첫 사회생활>은, 그래서 기존에 어린이를 소비하던 예능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어른이 바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웃게 만들어주는 대신, 있는 그대로에 가까운 아이들을 보며 함께 걱정하고 질문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 <나의 첫 사회생활>이 알려준 팁이 손녀의 육아에 참고가 되었다는 정석희 평론가는 어린이들의 생생한 사회생활이 담겨 있는 이 프로그램이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마주할 사회생활에 대한 예습”이라 평하며 “모처럼 양육과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되어줄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극찬을 보냈다. 극찬은 이승한 평론가도 마찬가지다. “아직 충분히 성장이 안 끝난 수많은 어른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가 있든 없든 모두가 봐야 할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남겼다. 김선영 평론가는 “어른들은 너무 빨리 잊어버렸거나 미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성장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게도 된다”는 말과 함께 이것은 유아 예능이 아니라 원초적 인간에 대한 보고서라 말했다. 아직 <나의 첫 사회생활>을 미처 만나지 못한 분들이라면, 세 평론가를 믿고 어린이집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과의 만남은 이제 세 차례 남았다.



◆ ‘어른이 바라는 아이들’ 말고 진짜 아이들의 삶

얼마 전부터 놀이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손녀, 며칠 전 돌아오더니 친구가 손을 물었다며 울먹이는 게 아닌가. 그 통에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좀 했다. 진위 파악을 위해 일단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는 편이 옳은지, 놀다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니 두고 보는 편이 옳은지. 마침 <나의 첫 사회생활> 5화에서 전문가가 답을 알려줬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우에만 움직이라고.



실제로 <나의 첫 사회생활>에서 놀이 중 의견 다툼으로 코피까지 본 은성이와 지석이는 이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이가 좋아졌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정답은 아닐 것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의 아이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성향이며 태도, 언어 습관이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어떤 조합,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게다.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 그대로 책으로만 육아를 배웠으니 오죽이나 시행착오가 많았겠나.



굳이 전문가의 조언 없이도 그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깨닫고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가 TV를 통해 만나는 아이들은 어른이 바라는 아이가 태반이다. 아이 답지 않게 마음 따뜻하고 배려 깊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되바라졌거나, 이렇듯 작가가 창조해낸 드라마 속 아이들이야 두 말 할 것도 없고 예능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프로그램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와 달리 <나의 첫 사회생활>은 진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생생한 사회생활을 보여준다. 아울러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마주할 사회생활에 대한 예습으로 이어진다. 모처럼 양육과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되어줄 프로그램이 나왔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어른들은 충분히 어른인가요?

처음 <나의 첫 사회생활>을 접한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출연하는 어린이들은 서로를 만나자 마자 나이를 먼저 확인하고, 한 살 터울임에도 ‘야’라고 부르는 동생들을 꾸짖는 것으로 제 위치를 확인하고 서열을 정리한다. “어른들의 행태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자기들끼리도 고스란히 저 서열구조를 답습하는구나.” 탄식하고 있을 무렵 전문가들이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단이 나이와 키, 힘 정도가 전부인 어린이들에게 저와 같은 일은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깨달았다. 어린이들이 어른을 닮아간 게 아니라, 어른들이 아직도 어린이 시절의 습성을 벗지 못한 것이란 사실을.

어린이들에겐 판단근거가 부족하기라도 하지, 초면부터 상대를 평가하고 나이로 서열을 잡는 게 결례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어른들은 대체 왜 ‘민증을 까보자’는 버릇을 못 버린 것일까? <나의 첫 사회생활>은 어린이의 사회생활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른들은 충분히 어른인지를 침착하게 물어보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지석과 은성이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홍진경은 말한다. 아이들은 화가 나면 가서 이를 선생님이라도 있지, 어디다 이를 선생님도 없는 어른들이 화를 통제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함께 출연한 전문가들은 그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도망가라고, 그렇게 하면 최소한 감정에 휘말려 상대에게 일평생 상처가 될 말을 내뱉는 일은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어린이들이 순간의 감정을 못 이겨 치고 박고 싸우는 광경을 보면서 “쟤는 왜 저런다니” 같은 말을 쉽게 하는 어른들이야말로, 오히려 상대에게 평생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모진 말을 내뱉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잦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조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사회생활>은 아이가 있든 없든,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든 없든 모두가 함께 보면 좋을 프로그램이다. 아직 성장 중인 어린이들의 시행착오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아직 충분히 성장이 안 끝난 수많은 어른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 같은 작품을 만났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원초적 인간에 대한 보고서

최근의 미디어에서 유아 예능이라는 용어처럼 모순적으로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TV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아동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아동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대상화되는 경우가 많다. TV 육아 예능 열풍의 시초가 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 방영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와 어른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는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잇달아 등장한 경쟁 프로그램들 속에서 출연 아동들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내용 또한 ‘랜선 삼촌이모’들을 위한 재롱잔치로 변해갔다. 급기야 원래는 아동들이 보고 즐겨야 하는 유아 프로그램이라는 용어마저 어른들을 위한 이벤트 같은 방송들을 지칭하게 된 모순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 역시 주시청층은 어른들이다. 본방송이 진행되는 심야시간대는 출연아동들이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꼭 어른들이 봐야 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기존의 유아 예능 속에서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편집된 아이들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면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갑자기 다른 친구들에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쟤는 대체 왜?”라고 묻는 대신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 등 전문가의 출연도 이해에 도움을 주지만, 이 프로그램 자체가 아동을 대상화하기보다 삶의 주체로 등장시키기에 가능한 것이다.



첫 회부터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드러냈던 5살 지석이가 5회에서 친구와 또 싸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미 첫 회에서 “만 4,5세가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의도를 처음 이해하게 되고, 그전에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었던 시청자들은 지석이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차분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침착하게 타이르는 선생님의 말에 감정을 추스른 지석이는 곧 자신이 때린 은성이에게 다가가고 두 아이는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한다. 내일이면 또 싸울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어쨌든 오늘의 힘든 고비 하나를 넘겼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이들이 어떤 문제로 인해 갈등하는 과정과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까지 차근차근 따라가는 동안, 어른들은 너무 빨리 잊어버렸거나 미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성장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게도 된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유아 예능이 아니라 원초적 인간에 대한 보고서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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