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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원작이 남긴 4개의 트라우마 어떻게 해결했나
기사입력 :[ 2020-02-26 13:54 ]


‘작은 아씨들’, 사랑 말고도 여성들 삶을 결정짓는 건 많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콧은 <작은 아씨들> 2권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영원한 트라우마를 남길 사건을 네 개 터트렸는데,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다.
2. 베스가 죽었다.
3. 로리는 조 대신 에이미와 결혼했다.
4. 조는 로리 대신 못생기고 나이 많은 독일인 교수와 결혼했다.

이 중 베스의 죽음은 완벽하게 이해 가능하다. 베스의 모델이 된 작가의 동생 엘리자베스 슈얼 올콧은 실제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베스의 죽음을 그리는 건 동생을 애도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하고 나중에 로리가 에이미와 결혼하는 이야기 전개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이 역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전개이다. 조에게 로리가 로맨틱한 연애의 상대라는 아이디어는 곱씹어볼 수록 이상하다. 그들의 관계는 연인보다 유사 자매에 가깝기 때문에. 남매가 아니라 자매다. 실제로 올콧은 이 이웃집 남자아이 캐릭터에게 여자애 같은 별명을 붙여주고 여자애처럼 행동하게 하며 나중엔 명예 자매로 클럽에 가입시킨다. 이 관계를 로맨틱한 무언가로 발전시키면 근친상간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이 거둔 가장 큰 성취는 조와 로리가 결코 맞지 않는 상대이며, 에이미가 로리와 결혼한 것이 결코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조와 로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꼭 로맨틱한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감정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에서 이들의 관계가 어떤 파국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정말 가차 없이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반대로 에이미와 로리의 관계는 엄청나게 로맨틱하지는 않다고 해도 훨씬 현실적이고 안정적이고 이치에 맞는다. 이상적인 관계는 아닐 수 있어도 결코 ‘동생이 기회를 노리다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았다!’로 단순화시킬 수 없고, 영화 후반엔 모두가 납득한다.



하지만 4번이 남았다. 결코 결혼하지 않을 거라던 조가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못생기고 나이 많은 독일인 남자와 결혼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건 조의 캐릭터와 욕망에 맞았다. 하지만 베어 교수와의 결혼은 캐릭터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배반처럼, 패배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조에게 자신을 투영한 루이자 메이 올콧은 끝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그레타 거윅은 여기서 이전 각색물과는 다른 접근법을 몇 가지 시도한다. 이들 몇 개는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거윅은 베어 교수 역으로 루이 가렐을 캐스팅한다. 보통 영화사상 가장 핫한 베어 교수라는 말을 듣는데, 아주 사실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많이들 좋아하는 1949년 버전에선 이 역을 로사노 브라지가 맡았는데, 이 사람은 당시 잘생긴 유럽인 연인 전문배우였고 지금의 루이 가렐보다 젊었었다. 비록 그 영화에선 지독하게 매력이 없었고 쓸데없이 가부장적이었지만.



베어 교수를 매력적인 이성애 연인으로 그리려는 시도만 따져도 거윅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버전에서 질리언 암스트롱은 이 캐릭터에 가브리엘 번을 캐스팅한다. 젊고 잘생긴 버전은 아니었고 위노나 아이더의 조와 나이차도 원작처럼 상당했지만 이 둘의 로맨스 묘사는 섬세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암스트롱의 버전은 이 둘의 관계에 진지했다.

거윅도 분명 이 길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다. 루리 가렐 캐스팅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도입부에 나오는 베어 교수의 논평 장면은 각본도, 연기도 모두 훌륭해서 이 두 캐릭터의 관계를 계속 보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길로 안 간다. 대신 거윅은 베어 교수가 나오는 후반 장면에서 이야기를 두 개로 쪼갠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조와 베어 교수는 로맨틱하게 맺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조는 출판업자의 설득에 못 이겨 자신이 쓴 <작은 아씨들> 소설의 결말을 수정해, 독신을 고집하려던 주인공을 억지로 결혼시킨다. 그렇다면 베어 교수와 맺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는 소설 속 허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윅은 확답을 주지는 않지만 이 부분을 허구로 보는 게 이치에 맞다. 내가 트위터에서 투표를 해보았는데, 86퍼센트의 참가자가 이를 허구로 보았다.



원작을 모르고 영화도 보지 않은 독자라면 당황할 수도 있겠다. 슈뢰딩어의 조도 아니고 결혼한 조와 독신으로 남는 조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에서 영화가 끝난다니. 이건 비겁한 유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건 분명히 결론을 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특히 주인공이 퀴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준 인물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대부분 관객들은 후자의 현실을 택하겠지만 전자를 택한다고 해도 조의 캐릭터는 바뀌지 않는다. 결말에서 조에게 중요한 건 19세기 미국의 험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 작가라는 것이지, 누구랑 맺어졌느냐가 아니다. 사랑 말고도 여자들의 삶과 캐릭터를 결정짓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작은 아씨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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