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 심은경의 영웅담이 아니라서 더 가치 있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성실하다고 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이제는.” tvN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에서 이혜준(심은경) 기재부 사무관이 하는 이 담담한 한 마디는, 한 때 월가를 주물렀던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곽노인(전무송)의 가슴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그리고 그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도 똑같은 울림을 만든다. 이제 성실하게 일한다고 부자가 되는 세상은 더 이상 아니다. 그걸 우리는 매일 같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혜준은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 후 세무사 사무실에서 4년 정도 일했던 경험을 들어 공평치 않은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 때 제 한 달 월급이 140에서 150만원 정도였는데 저는 한 달에 고객들이 1400에서 1500만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했었어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정보와 힘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건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우리가 한 달 생계를 위한 월급을 받으려 애쓰는 그 일들은 누군가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의 수익을 만들어낸다.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다.



이혜준은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렇지만 사는 동안에는 함께 사는 거잖아요. 그러면 자기들이 뭔가를 갖는 과정에서 최소한 낙오자는 만들지 말아야죠. 그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의 의무이고 책임이에요.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부정 당하고 정보와 숫자를 활용한 영악한 사기가 신화로 포장되는 세상에서는 저희 고모부 같은 분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신화는 동경을 만드니까요. 그리고 그 포장된 신화는 삶을 파괴하고 어떤 경우엔 사람을 죽게도 만들어요.”

이혜준이 하는 이 말은 한 때는 전설이 된 투자가였지만 지금은 암 투병하는 노인이 되어 무상함을 느끼는 곽노인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혜준이 말하는 신화가 바로 자신 같은 ‘정보와 숫자’를 활용해 심지어 영악한 사기를 치고 부자가 된 자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들은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돈을 마치 ‘게임’처럼 숫자 놀음으로 벌어들이지만, 그 돈은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일 수 있다.



이 부분은 <머니게임>이 다소 복잡한 경제의 흐름을 소재로 다루면서 하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바하마의 유진한(유태오)은 바로 그 ‘머니게임’을 하는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는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회사를 매수해 한국의 등급을 낮추고 치솟는 환율로 인해 쏟아져 나올 부동산 매물들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모두 사들인 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먹튀하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킨다. 그건 그에게 머니게임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의 경제는 파탄 날 위기에 처한다.



이를 막기 위해 허재(이성민) 경제부총리와 채이헌(고수) 국장 그리고 이혜준이 공조해 유진한과 결탁해 국가경제를 저당 잡히게 만든 조희봉(조재룡) 기재부 과장을 색출해내고, 곽노인에게서 받은 신용평가사의 비리자료를 통해 미국을 압박하며, 환율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 환란을 막아낸다. 이로써 유진한의 머니게임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걸로 이 게임은 끝난 게 아니다. 허재는 과거 정인은행 BIS 비율 조작을 조희봉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간 후 이걸 기회로 삼아 더 높은 대권을 향해 나간다. 채이헌은 유진한을 밀어내느라 자신이 손을 잡은 허재가 사실 아버지를 벼랑 끝에서 밀어 죽인 살인자라는 걸 알고는 경악한다.

그들은 여전히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머니게임에 들어가 있다. 허재가 대륙그룹과 손잡고 대권과 경제를 휘두르려는 건 또 다른 머니게임이 될 테니 말이다. 이들의 돈과 권력의 카르텔 앞에 이혜준 같은 일개 사무관의 존재는 너무나 무력해 보인다. 물론 허재를 무너뜨릴 증거가 채이헌의 손에 들려진 이상 만만찮은 전쟁이 벌어질 테지만, 거기에 이혜준 사무관 같은 서민이 목소리를 낼 자리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



<머니게임>은 그래서 이혜준 사무관의 영웅담을 그려낸다기보다는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들의 실체에 대한 폭로를 담고 있다. 우리는 어째서 성실하게 매일 하루하루를 살지만 노력한 만큼 잘 살지 못하는가. 반대로 저들은 숫자 놀음만 하면서도 떵떵거리며 살고 그 숫자 놀음에 서민들은 왜 심지어 삶조차 이어갈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하게 될까. 그것은 저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서의 돈이 아니라, 한 판 게임을 하듯 벌어가는 것으로서 돈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머니게임>은 2% 남짓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경제라는 소재가 결코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나아가 익숙하다 해도 들여다보고픈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게다. 결국 드라마가 보여주듯 서민들은 여전히 어렵고 심지어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2% 시청률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들의 머니게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우리네 현실을 다소 복잡하더라도 들여다봐야 저들도 맘대로 농단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혜준 사무관은 유진한이 힘겹게 살았던 엄마를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부자가 되려 했다는 이야기에 이렇게 말해준다. “그러니 지사장님 어머니는 치매이시고 당신이 계신 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잘 모르시는 거잖아요. 더 이상 어머니를 위해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아프리카에 2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죽어갈 수 있는 일을 했잖아요. 결국 본인 욕심이라는 거예요.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한.” 돈을 게임처럼 생각하는 엇나간 삶에 대해 확고한 일침을 날리는 이혜준의 소신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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