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② 여성 MC를 추천합니다
이지혜·김혜수·박지윤이 꾸리는 프로그램에 대한 상상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편집자 주◾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숨 가쁘다.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다 챙겨보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시대, 당장 눈앞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초점을 잃게 된다. 그래서 TV삼분지계는 생각했다.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 리뷰 말고, 보다 더 긴 호흡으로 TV를 곱씹어 볼 수는 없을까? TV삼분지계는 한 달에 한 번, 특정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 긴 호흡으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이름하여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이다.

2020년 2월 [TV삼분지계]가 골똘히 고민해 본 생각은 ‘이런 프로그램들에 여성 MC가 간다면 어떨까?’다. 한국 TV에는 훌륭한 여성 MC들이 즐비하다. 이금희, 정은아, 백지연, 박미선, 박경림, 박소현, 정선희, 박지윤, 최유라, 이영자, 최화정, 송은이, 김숙, 박나래, 장도연… 아마 지면만 허락된다면 그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써넣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칼럼 한 회 분량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처럼 많은데 자리는 언제나 부족하다. 대부분의 토크·버라이어티 쇼 MC 자리는 남성의 몫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시청자들을 설득할 만한 기회와 시간도 대부분 남성 MC들에게 더 많이 열려있다. 송은이·김숙을 필두로 한 일군의 ‘송은이 사단’이 꾸준히 그 영토를 넓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기회는 충분하지 않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평소 TV를 보다가 ‘저 자리에 여성 MC가 들어가도 될 거 같은데’ 싶었던 생각들을 모아서 함께 보기로 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다양한 인생 경험을 기반으로 MC로서의 활약을 넓혀가고 있는 이지혜가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잘 해줄 것이라며 JTBC <정산회담> MC석에 한 자리 정도 더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펼쳤다. 김선영 평론가는 지식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성 방송인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는 현상을 지적하며, 연예계 대표 독서광이자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도 있는 김혜수가 진행하는 도서 프로그램을 상상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윤종신의 빈자리를 6개월 째 스페셜 MC로 채우는 중인 MBC <라디오스타>에 박지윤이 들어가는 광경을 그려봤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함께 상상해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가능성도 함께 늘지 않을까?



◆ 현실적인 경제 조언이 가능한 사람, 이지혜

현재 100개가 넘는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 방송된다지만 ‘경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한 코너에서 출발한 KBS <김생민의 영수증>이 뜻밖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경제’를 쉽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김생민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하차하는 바람에 폐지라는 극약 처방을 받았으나 사실은 문패만 바꿔 달면 될 일이었다. 한 회라도 본 사람은 안다. 실제 주체는 송은이·김숙이 아니었나. 같은 설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8부작 KBS <슬기로운 어른이 생활>이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마무리 된 건 송은이·김숙 같은 현실 조언이 가능한 진행자가 없어서이리라.



그리고 얼마 전 JTBC <돈 길만 걸어요 - 정산 회담>이 나왔다. 의뢰인의 문제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해결한다는 점에서 <슬기로운 어른이 생활> 쪽에 더 가깝다. 기획의도에 ‘부내나는 내일을 꿈꾸는 시청자들에게 황금빛 ‘돈길’을 열어줄 재테크 전문가들의 난장 토론쇼’라고 돼 있지만 정작 제대로 토론이 가능한 출연자는 몇 안 된다. 경제 프로그램임에도 지혜로운 경제생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자신의 경험을 생생히 전할 수 있는 이가 드물다는 얘기다. 전현무는 대본에 따라 진행하는 정도고 양세형·양세찬 형제는 아예 무논리를 앞세웠고 붐은 두 형제보다 나은 부분이 없다. 그렇다보니 아무 말 대잔치라는 점에서 ‘난장 토론’은 맞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경제 전문가 없이도 쉽고 재미있게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출연자 개편이 필요하다. 새로운 인재가 발굴되면 더 없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방송인 이지혜를 추천한다. 그간의 면면으로 볼 때 송은이와 합을 맞춰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담긴 성의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김혜수의 책방이 보고 싶다.

TV에서 출연진 성비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분야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서울 YWCA가 발표한 TV 시사토론 프로그램 성비 전수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남성 출연진은 무려 80%에 육박했다. 50대 남성이 제일 많았고, 노년 여성은 아예 없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성비불균형은 한국 사회 지식 담론에서 중노년 남성들이 과대대표되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몇 해 전부터 지식과 교양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 국내 예능 프로그램은 이 분야의 고질적 문제점도 고스란히 가져왔다.

소위 ‘몸’ 쓰는 버라이어티 예능에 이어, ‘머리’ 쓰는 지식 예능까지 남성들이 독점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한층 더 가파르게 됐다. JTBC <비정상회담>, tvN <알쓸신잡>,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MBC <선을 넘는 녀석들>, KBS <대화의 희열> 등 남성들이 주도하는 지식 예능이 유행하는 동안 유시민, 설민석, 이동진 등 남성 지식인들은 셀러브리티가 됐고, 유희열, 이적, 성시경, 타일러 라쉬 등 소위 ‘고스펙’을 갖춘 남성 연예인들은 지성의 아이콘이 됐다.



이 같은 부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책방’이다. 책은 특정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편적 매체다. 하지만 tvN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와 같은 ‘책방’은 패널들을 남성들로 채우며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지식 프로그램의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는 국내 독서 시장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여성층임을 생각할 때 성비불균형 문제를 넘어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당장 연예계의 독서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도 여성이다. 읽고 싶은 책이 국내 미출간 도서일 경우 개인적으로 번역을 의뢰해 읽는다는 배우 김혜수의 일화를 넘어설 독서광 에피소드가 또 있을까? 김혜수는 이미 국내 최초의 심층 국제 시사프로그램 MBC 를 진행한 독보적 경력을 지닌 탁월한 MC이기도 하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아재들의 썰풀이 방송 말고, 김혜수의 지식 예능이 보고 싶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라스> MC 박지윤’을 상상해본다

제작비용이 높게 들지 않고 안정적인 시청률과 화제성을 담보하기에 적합한 포맷인 탓에, 지금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종합편성채널에서 인포테인먼트 토크쇼가 제작되어 방영 중이다. 그리고 이 장르에서 박지윤만큼 잘 하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박지윤은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쇼 전체 호흡을 조절할 줄 알고, 깔끔한 정리가 필요한 순간엔 전직 아나운서다운 면모를 발휘하며, 재미를 위해 독한 멘트나 망가짐으로 방점을 찍어야 하는 순간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방송 경험이 많지 않은 전문가들을 모셔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으로 쇼를 꾸리는 인포테인먼트 토크쇼 MC에 그가 자주 기용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그 재능을 꼭 인포테인먼트 토크쇼에서만 써먹어야 할까? 박지윤이 증명해 온 역량은 본격 예능 토크쇼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박지윤은 이미 JTBC <썰전>에서 김구라·강용석이라는 쉽지 않은 호흡을 맞추면서도 입담에서 밀리는 일 없이 쇼의 중심을 잡고 간 바 있고, JTBC <크라임씬> 시리즈에서는 매번 분장과 연기로 사람을 웃기는 동시에 날카로운 추리를 선보이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는 토크 전체의 흐름을 조율할 줄 알고, 자신의 주관도 뚜렷하게 드러낸다(<썰전>). 필요하면 자신이 망가져서 웃음을 주는 것에도 능하다(<크라임씬>). 아직도 남성 MC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본격 예능 토크쇼 장르에서, 이런 박지윤을 더 크게 기용한다면 어떨까?



이를 테면 MBC <라디오스타>는 어떤가? 윤종신이 ‘이방인 프로젝트’로 자리를 비운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동안, <라디오스타>는 빈자리를 계속 스페셜 MC 체제로 메우고 있다. 김국진-김구라-안영미 3인의 호흡만으로도 <라디오스타>의 색깔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겠지만, 한편으론 이제 슬슬 보다 안정적인 호흡 안에서 케미스트리가 쌓이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갈급하다. 박지윤은 이미 김구라와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고, 윤종신이 맡아서 해 왔던 토크 교통정리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윤종신이 돌아오면 어떻게 하냐고? 괜찮을 거다. 이미 과거에 김국진-윤종신-김구라-유세윤-규현의 5인 체제를 가동해 본 경험이 있는 <라디오스타> 아닌가.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JT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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