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오지 생존의 막막함과 모험심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이 400회를 맞이했다. 2011년 10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햇수로 10년째 방송 중인 장수 예능이다. 지금이야 시청률과 화제성이 반비례하는 카테고리에 묶여 있지만 한때 <정법>은 두 자릿수 시청률로 금요일 예능 시대를 열어젖힌 변혁의 주인공이자, 리얼버라이티의 극한에 대한 정의와 예능 볼거리 확장을 일군 선구자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아웃도어, 부쉬크래프트, 생존, 좀비 같은 키워드를 우리네 예능의 방식으로 풀어낸 트렌디한 예능이었다.

또한, 백종원 이전에 캐스팅 자체가 기획이자 콘텐츠인 사례기도 하다. 400회 기념간담회에서도 나온 ‘김병만의, 김병만에 의한, 김병만을 위한 프로그램’이란 말은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분명 김병만은 코미디언이지만 현대 문명 속에서 살던 우리가 태초로 돌아가 생존에 직면한다는 <정법>의 서사에 웃음 코드는 없다는 점이다. 신체적 핸디캡을 완벽히 넘어선 일머리와 체력, 단련된 육체에서 나오는 나무타기부터 어류채집까지 어디서도 어떻게든 살아나올 듯한 만능의 다재다능한 생존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예능 대상도 두 차례 거머쥔 우리 방송사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더 나아가 <정법>은 탁 트인 순백의 대자연 앞에 카메라와 병만족을 놓으면서 우리네 삶을 멀찍이서 바라보게 만드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지만 쳇바퀴 굴리듯 갑갑한 일상,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와 번민이 생존이란 본질 앞에서 한순간 왜소해졌다. 정글은 일종의 현실 세계 탈출의 리셋 버튼이었다. 꿈틀거리는 생존 본능은 저 깊숙이 덮여 있던 소년소녀 시절 모험심을 건드렸고, 그렇게 <정법>은 예능에서 웃음이 아닌 볼거리와 대리만족과 같은 정서적 공감대만으로도 최고의 인기 예능이 됐다.

이런 찬란한 역사를 가진 <정법>이 400회 특집(정확히는 403회부터 방송된다)을 자축하는 의미로 2013년 100회 특집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헝거게임’에 이어 무려 7년 만에 ‘헝거게임2’를 준비했다.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헝거게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특집은 역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정법 멤버들을 두 부족으로 나누어 제작진이 준비한 미션 대결을 펼치는 일종의 게임쇼다. 김병만이 병만족을 이끌고 오지 정글에서 살아남는다는 기존 설정에서 벗어난 첫 실험으로써 <정법>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번 ‘헝거게임2’에서의 실험은 김병만의 신분을 족장에서 설계자로 바꾼 점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설계자 김병만을 보는 재미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존의 주체에서 점점 정글 가이드처럼 변하고 있는 김병만의 변화가 잘 드러난 설정이라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400회 기념 기자간담회 관련 기사에서 유독 눈에 띈 부분도 안전에 대한 강조였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지만 이 자리에서 안전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김병만과 함께하는 정글 체험에 대한 자기합리화나 변명처럼 느껴졌다. 보수적으로 살펴봐도 지난해 토요일로 방송 시간 변경한 후 <정법>은 생존보다는 김병만의 정글 체험 캠프에 가깝다. 무인도에 떨어진 막막함은 사라지고, 정글식 요리가 펼쳐지는 쿡방과 함께 다이빙이나 체험 낚시는 이제 필수 생존코스가 됐다. 생존이란 미션 하에 긴장감을 자아내는 스토리텔링을 이어가지만 잘 알려진 몇몇 사건과 1,2기로 나눈 병만족 운용의 패턴 등으로 인해 생존의 로망이나 야생의 리얼리티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션은 절대 실패할 리가 없으며, 생존은 어떤 자연의 어려움이 닥쳐도 무조건 성공하는 것을 10년간 봐오니 긴장감이란 게 나올 수가 없다.

그 대신 김병만이 제공하는 어드벤처, 혹은 해양 레저와 캠핑 등 대리체험의 볼거리가 생존 로망의 빈자리를 메운다. 일종의 여행 상품처럼 코스와 엑티비티가 짜여 있다. 장소가 어디든 누가 출연하든 모듈화된 조립식 건물처럼 패턴대로 똑같은 볼거리들이 반복된다. 캐스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병만보다 연장자가 꼭 한명씩 포함되고, 남자 아이돌과 먹방이나 쿡방이 가능한 인물, 그리고 여성 출연자 중 한 명은 무조건 육감적 몸매의 소유자여야 한다. 간혹 <정법>과 관련된 이슈들은 대부분 이런 여성 출연자의 몸에 밀착되어 있다.



그러면서 점점 불편해지는 장면이, 야생동물 사냥과 낚시다. 어차피 생존이란 서사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는데, 생존이란 미명하에, 실제로는 레저의 일환으로 여러 동물들의 생명을 취한다.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 살아있는 생선의 심장을 떼어 내거나 손질하는 장면을 이색 볼거리처럼 만들고, 먹지도 않을 상어 낚시에 도전한다. 10년 사이 크게 발전한 동물권에 대한 의식에 비춰볼 때 걱정스런 부분이자, 체험 관광으로 변질되면서 아쉬워진 볼거리다.

그래서 400회 특집이 이런 패턴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영화적 스케일을 자랑한다는 ‘헝거게임2’가 아니라, 김병만의 본연의 모습을 즐길 수 있는 초심 기획이 아쉬운 이유다. <헝거게임2> 1회는 그랜드오프닝과 거리가 있었다. 배경, 설정, 캐스팅부터 신선함과는 거리가 먼데다 7년 만에 돌아온 이벤트라거나 기자간담회를 열 정도의 특별함이 없었다. 오히려 김병만이 빠졌고, 매번 보는 열대 바다에서 수영과 달리기라는 ‘무기고 게임’의 단순한 볼거리가 30분 정도 진행되니 지루했다. <런닝맨> 같은 게임예능도 계속해 설정에 단계와 난이도를 높이는데, 캐릭터쇼의 발판도 약하고,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을 주인공으로 삼은 <정법>의 볼거리가 발전이 아닌, 패턴화 모듈화되어 있단 점은 앞으로의 500회, 600회를 생각했을 때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다.



<정법>이 토요일 9시 격전의 편성 전쟁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온 가족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400회는 기념비적인 숫자다. 너무 멀리 와서, 너무 대단해져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어색하긴 하겠지만 해양 레포츠와 여성 출연자의 몸매가 아닌 오지 생존의 막막함과 모험심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언제나 믿음직한 족장의 능력은 <정글의 법칙>이 장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다. 그런데 가이드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이 부분조차 점점 더 매력을 잃고 있다. 이 기회에 스케일을 키워서 볼거리를 만드는 대신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품고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볼거리의 스케일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캐스팅이 얼마나 더 화려해지더라도 진정성을 잃은 생존 리얼리티는 미지근하다. 그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정글 이야기가 그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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