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 심은경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유태오의 재발견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떻게 한 사람이 경제를 망칩니까?” 자신이 채병학 교수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린 이유에 대해 끝까지 그가 우리 경제에 미친 해악을 꺼내놓는 허재(이성민)에게 채이헌(고수)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허재의 확증편향은 변함이 없다. 채병학 교수의 그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IMF 이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나라 경제를 지금껏 어렵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거라고.

“그래서 제 아버지를 죽여서 원하는 걸 얻으셨습니까? 누굴 희생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총리님은 처음부터 틀렸습니다. 제 아버지를 죽여서가 아닙니다. 혼자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다 아니까 내가 알아서 하면 다 될 수 있다는 그 오만, 법을 이용하고 편법을 쓰고 법을 어겨서라도 기어이 이루고 말겠다는 그 병적인 집착.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채이헌은 자신 또한 허재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며 후회한다. 그리고 그 말은 단단해 보였던 허재의 확증편향 또한 무너뜨린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허재는 갑자기 멈춰서 뒤돌아보더니 후회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나라의 경제를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자신의 엇나간 욕망이었을 뿐이었다.

종영한 수목드라마 tvN <머니게임>은 경제를 숫자놀음으로 치부하며 마치 게임하듯 농단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걸 막는 이들 또한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는 걸 보여줬다. 허재도 채이헌도 나라 경제를 뒤흔드는 바하마의 유진한(유태오)과 맞서 싸웠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제를 숫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정신 나게 만든 인물은 이혜준(심은경)이라는 소신대로 살아가는 올곧은 사무관이었다. 그는 숫자 뒤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줬다.



결코 나라의 경제가 숫자에 좌우되는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머니게임>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지금껏 좀체 다루지 않았던 경제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가치와 의미를 가진 드라마였다. 물론 경제라는 것이 어려운 용어들과 숫자, 그리고 국내외 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이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머니게임>은 애초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려운 드라마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경제에 있어 숫자가 아닌 사람을 봐야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의 가치 또한 시청률 같은 수치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치밀한 사전취재를 통해 보다 깊게 경제적 사안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충분히 보여졌고, 그걸 구현해가는 과정에서의 스토리텔링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경제라는 거대담론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는, 이혜준과 기재부 사람들 그리고 그의 고모인 이만옥(방은희) 가족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그 거대담론으로서의 경제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구현해냈다.



특히 주목된 건 이 작품을 통해 더 단단한 배우로서의 입지를 보여준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지금껏 해왔던 발랄하고 명랑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진지하고 소신 있는 사무관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 연기했다. 심은경은 배우로서 자신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증명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인 고수, 이성민 같은 배우들은 물론이고 최병모, 조재룡 같은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전체적인 드라마에 안정감을 주었다면, 이 드라마 최고의 발견은 역시 유진한 역할을 연기한 유태오가 아닐까 싶다. <배가본드>, <초콜릿>에서 슬쩍 선보였던 유태오의 연기는 <머니게임>에서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로 드라마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다뤄지는 장르들과 소재들만 반복되는 게 우리네 드라마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청률이 낮을 거라 해서 시도되지 않던 소재를 가져와 탄탄한 대본으로 엮어낸 신인 이영미 작가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작품 치고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무난하게 풀어냈다는 건 이 작가가 가진 잠재력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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