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게임’, 운명에 맞서는 인물들의 욕망이 보이지 않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죽음 직전의 순간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김태평(옥택연)은 구도경(임주환)이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이 터져 강력팀 형사들을 모두 죽게 만드는 참사가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또 이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서준영(이연희) 형사 또한 죽음의 위험에 다가갈 거라는 것 또한.

하지만 MBC 수목드라마 <더 게임:0시를 향하여(이하 더 게임)>에서 이런 사실들을 어느 정도 인지한 강력팀 형사들은 엉뚱하게도 의외의 한가함(?)을 보인다. 강재(신성민)와 봉수(이승우)는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험계약을 깨고 그 돈으로 스포츠카를 빌려 함께 달린다. 물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 이들의 선택이 짠하게 느껴지는 면은 있지만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이런 한가함은 자칫 극적 긴장감을 흩트릴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구도경이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서준영을 불러내고 또 그렇다고 나갔다가 잠복해있던 형사들이 그를 어이없게 놓치는 장면도 너무 허술한 느낌이 강하다. 결국 그 장면은 구도경이 서준영을 납치하기 위해 넣은 것이란 의도가 너무나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도경 앞에서 총까지 겨눴던 서준영이 마지막 장면에 관 속에 누워 있는 장면도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형사가 그것도 총까지 겨누고 있으면서 범인에게 쉽게 제압된다니.

이렇게 장르적으로 팽팽하기보다는 어떤 허술하고 느슨한 느낌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드라마가 앞으로 벌어질 어떤 특정한 장면을 미리 지정해놓고 그렇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 중간 과정에 인물들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극중 개연성에 의해 또 각자 가진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결정적 장면을 향해 가기 위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이 작품에서 김태평이나 서준영이 아니라 구도경이 실질적인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건 그 내적 갈등이나 욕망이 이 캐릭터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어서다. 구도경이라는 인물에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동기들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김태평이나 서준영은 초반에는 동기들이 들어갔지만 차츰 뒤로 가면서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각자 갖고 있는 감정이나 욕망의 동기들이 희석되어 있다.

김태평이 본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은 장면들이 너무나 많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스릴러 장르가 가진 속도감을 반감시키는 이유다. 드라마가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지점에 이런 인서트들은 제동을 걸고, 여기에 갑자기 들어가는 김태평과 서준영의 멜로와 형사들의 한가한 에피소드들은 긴장감을 깨버린다.



장르의 퓨전은 잘 시도되면 독특한 질감의 드라마를 만들어내지만, 제대로 엮어지지 않으면 서로의 장르가 가진 장점들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더 게임>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장르의 부딪침이 각각의 장르가 가진 힘을 상쇄시켜버리고 있어서다.

스릴러를 주로 채우는 건 액션이지만 그 액션에서 결국 중요한 건 그 행동을 개연성 있게 설명해주는 인물의 강력한 내적 동기다. 하지만 <더 게임>은 이미 정해놓은 특정한 장면을 향해 가기 위해 인물들이 이리저리 배치되고 움직이는 듯한 이야기 전개를 보인다.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지만, 드라마의 인물들은 작가가 정해놓은 운명에 휘둘리고 있다. 이래서는 인물의 매력이 생겨나기가 어렵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