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보여준 숫자 뒤의 사람, 이들이 봄을 연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이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코로나19로 인해 스튜디오에서 화상으로 연결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자꾸만 목이 메었다. 지금껏 방송 중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유재석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닌 어떤 숭고함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먹먹함이었고, 절망 속에서 오히려 활짝 피어나고 있는 희망을 보고는 솟아나는 뜨거움이었다.

대구 지역 거점병원에 자원하신 정대례 간호사가 화상으로 마스크를 쓴 채 얼굴을 보이는 그 장면만으로도 마음이 묵직했다. 유재석은 “그 모습만 봐도 뭉클하다” 했다. 잠시 점심 먹고 낸 짬이라는 정대례 간호사.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 간호사 분은 의외로 너무나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 곳에 자원한 이유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는 항상 어디서든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가겠냐고 의향을 물어봐서 아무런 사심 없이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하고 대구에 왔거든요.” 가족은 반대했지만 국가적 위기 상태에서는 항상 먼저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인력도 물품도 부족했다. 그들은 집을 못하고 하루 15시간에서 17시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의료물품이 부족해 마스크, 보호구, 장갑을 아껴 쓰고 있다는 말에 유재석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있지 않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정대례 간호사는 “가끔 가족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다른 스트레스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움주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힘든 시기를 빨리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만 전했다.



너무 씩씩하게 괜찮다고만 말하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을 전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정대례 간호사의 말에 유재석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냥 잘 있다고만 전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은 별로 없고요... 잘 지내고 있다고만 전하고 싶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그냥 저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는 특별히 불편한 건 없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연거푸 밝게 말하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흘리는 유재석과 조세호에게 오히려 정대례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마세요. 저도 잘 지키고 있어요. 사실 저희 가족도 보고 싶기도 하고요. 저희 병원도 걱정되고 그렇지만은 다들 잘 지내고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요 그냥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큰 자기님! 작은 자기님! 왜 그래 우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 말에 애써 마음을 추스린 유재석은 그러나 코로나 19가 끝나고 나면 가장 하고픈 게 뭐냐는 질문에 정대례 간호사가 “가족이 보고 싶습니다”라고 꺼내놓은 진심에 다시 먹먹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꼭 전달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유재석의 말은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임관해 첫 임무로 대구로 파견가게 된 신임간호 장교 김슬기 소위의 이야기는 간호사라는 직업의 숭고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만들었다. 또박또박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인터뷰를 한 김슬기 소위는 그 곳에 간 이유에 대해 어머니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지금 저희 어머니께서도 간호사이셔서 간호장교도 간호의 업무를 하는 직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파견을 가는 게 맞다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제아무리 직업이 같은 간호사라고 해도 자식을 위험할 수 있는 곳에 보내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김슬기 소위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께서 간호사이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어머니의 길을 따라서 저도 간호장교의 역할을 수행하게 돼서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슬기 소위는 코로나 19가 끝나면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광’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어려운 일에 나서면서 그 일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그 말이 또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역거점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감염과 이지연 의사는 여러 가지 업무를 그 때 그 때 닥치는대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정신없이 그 곳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확진자분들을 접촉하고 힘겨운 보호구 착용을 하고 일하는 게 힘들지만 다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람’과 ‘감사’를 이야기했다. “다들 고생하고 있지만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고요. 각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저희가 잘 이겨내도록 하겠습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지난 2월 25일 이성구 대구광역시 의사회 회장이 의사 동료에게 보낸 호소의 글을 소개했다. ‘존경하는 5700 의사 동료 여러분! 지금 대구는 유사 이래 엄청난 의료 재난 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선별검사소에는 불안에 휩싸인 시민이 넘쳐나는 데다 의료인력은 턱없이 모자라 입원치료 대신 자가치료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을 존중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선후배 형제로서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소명을 다합시다.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단 한 푼의 대가 한 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



그 글에 500명이 넘는 의사와 간호사가 한달음에 대구를 찾았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인 서명옥 의사는 걱정하는 가족에게 평소 감기도 안 걸리는 사람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지치고 우울해지다가도 추운 바깥에서 검사받으려 기다리는 시민들을 보면 최대한 빨리 검사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코로나 19가 끝나면 하고픈 일들에 대한 질문에 이들이 한 이야기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 대한 것이었다. 가족들과 한 끼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고, 공원을 산책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잠을 푹 잤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커피 한 잔을 평화롭게 마시고 싶다는 거였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숫자들. 확진자수가 얼마가 늘었고 사망자수는 얼마가 되며 완치자 수는 얼마가 늘었는가 하는 그 숫자들은 우리에게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 숫자 뒤에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감염병이 야기하는 타인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경계가 막아놓은 ‘소통의 물꼬’를 프로그램은 열어주었다. 그 곳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고 이겨내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위기가 영웅을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유퀴즈 온 더 블럭>은 그 영웅들이 바로 우리 가까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손님들을 위해 버스를 닦고 또 닦는 버스 기사분, 모두가 재택근무를 할 때 회사에 남은 일을 마무리하러 출근하는 회사원, 손님을 기다리며 닦고 또 닦는 택시기사분들,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택배기사분들, 밥도 못 먹고 퇴근 못하며 일하면서도 자영업자 분들을 걱정하는 방역업체 분들, 임대료 반을 깎아주면서도 ‘많이 해드리지 못한 점 이해해 주기시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건물주분들, 매출이 뚝 떨어져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는 힘든 시기에도 빵 봉사가 오히려 힘이 된다며 계속 하겠다는 사장님... 그 분들이 영웅이었다.



화창한 봄날이지만 거리를 활기차게 다니지 못하게 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러나 이런 저마다 위치에서 꿋꿋이 소임을 다하는 영웅들이 있어 곧 봄은 올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봄은 그렇게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숭고한 분들이 오게 하는 것이라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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