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유승호와 ‘그 남자’ 김동욱의 기억에 담긴 사회적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기억한다는 건 능력일까 형벌일까. 기억을 소재로 하는 두 드라마가 나란히 수목에 편성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tvN <메모리스트>와 MBC <그 남자의 기억법>이 그 드라마들이다. 두 드라마는 모두 기억에 남다른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이러한 초능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 다르다.

tvN 수목드라마 <메모리스트>는 신체 접촉만으로 타인의 기억을 스캔하는 능력을 가진 초능력 수사관 동백(유승호)이 주인공이다. 동백은 내적 아픔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잔혹한 살인마들을 잡아야 한다는 동기가 더 분명한 주인공이다. ‘초능력 수사관’이라 지칭될 정도로 이미 알려진 능력이지만, 그 능력을 갖가지 명분을 붙여 어떻게든 막으려는 자들이 있다. 누군가의 내밀한 사적 기억까지 스캔한다며 그 사생활 침해적 요소를 문제시하는 이들이다.



<메모리스트>에서 동백의 기억 스캔 능력은 그래서 주로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문제 안에서 활용된다. 동백은 살인마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보며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든 쓰려 안간힘을 쓴다. 정보를 캐기 위해 일부러 맞아가며 그 접촉으로 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검찰 세력들과 맞붙기도 한다.

<메모리스트>는 주로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 스릴러에 초능력을 더해 놓은 형태로 그려진다. 기억 능력을 통해 추적하는 동백이 있다면 이를 무력화하려는 살인범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것. 이 드라마의 최대 강점은 굉장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사건 전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는 ‘시간 순삭’의 경험을 하게 해준다.



반면 새로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메모리스트>와는 다른 드라마의 속도를 보여준다. 조금은 천천히 진행되는 이 드라마에서 HBN 보도국 기자이자 <뉴스라이브>를 진행하는 앵커 이정훈(김동욱)은 모든 걸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을 갖고 있다. 프롬프트가 작동하지 않자 특유의 기억력으로 대본 없이 방송을 소화하는 도입부를 통해 그가 가진 기억이 어떤 남다른 능력으로 소개되지만 드라마는 곧바로 그것이 능력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정훈은 사랑했던 여인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기억해낸다. 그런 아픈 기억을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건 그에게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이 된다. 기억한다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능력이 아니라 형벌이다. 그는 그 기억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메모리스트>의 동백이 어떻게든 기억을 스캔해 사건을 해결하려 애쓰는 반면, <그 남자의 기억법>의 이정훈은 그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간다. 기억하려는 자와 망각하고픈 자의 상반된 욕망은 우리에게 기억이 양면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공교롭게도 기억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되고 있고, 그 두 드라마가 다루는 기억에 대한 방식이 상이하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건 아무래도 최근 몇 년 동안 세월호 참사 같은 일들을 겪으며 우리에게 기억이 주는 양면적인 문제들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진실 규명을 위해 어떻게든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가 겪은 정서적 측면들을 이들 드라마들은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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