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같은 자리를 지킨 방송이 주는 위안과 감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우리네 삶의 풍속도가 급격히 달라졌다. 게임이나 영화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락다운(lockdown)’이 전 세계 유명 도시와 국가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고,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두 달 이상 이어가고 있는 우리도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런 시국에 2부작 다큐멘터리 MBC TV <시리즈M - 더 디제이>는 무려 30년간 늘 같은 시간, 같은 목소리로 함께하며 우리네 저녁 일상에 스며든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야기를 다룬다. 학창시절부터 퇴근길을 거쳐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을 보내게 된 생애주기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져가는 동안, 늘 같은 자리에 돌아보면 있는 존재가 주는 위로가 오늘날 더욱 반갑고 뜻 깊게 다가온다.



30주년 헌정 방송인만큼 대부분 최초다. 라디오의 본령을 지키고자 그 흔한 ‘보이는 라디오’조차 허락하지 않던 DJ 배철수는 방송생활 42년 만에 처음으로 일상 모습을 공개하고, <배캠>의 초대 PD이자 아내인 박혜영 PD도 인터뷰 석상에 나선다. 30주년 특집 이벤트로 팝음악사의 유서 깊은 명소인 영국 BBC 마이다 베일 스튜디오에서 닷새 동안 세계 최초로 생방송을 진행한 기념비적인 여정 ‘Live at the BBC’ 또한 카메라로 담았다.

귀로만 듣던 스튜디오의 풍경, 큰 제스처가 인상적인 배철수의 진행, 스텝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같은 방송 제작과정은 물론 배철수에 대한 주변 지인, 관계자들의 전언,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뻔한 얘기하지 말아라’라든가, ‘내가 듣지 않는 음악을 소개할 수는 없다’는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자의 철학과 직업의식을 듣는다. 변화된 음악 청취 환경을 알면서도 여전히 DJ가 손수 선곡하고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는 CD와 LP로 음악 트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 여전히 손 글씨로 대본을 쓰는 유일한 작가와 함께하고, 늘 가장 먼저 점심 때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방송을 준비하는 모습들을 다루며 오롯이 DJ의 역량에 기댄 방송이 3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인 배철수만이 가진 능력과 단단함을 돌아본다.



특히 라디오키드였거나 평소 청취자라면 흥미롭게 볼만한 지점이 많다. 런던에서 생방송을 라디오와 유튜브로 동시에 송출하기 위한 까다로운 준비 과정, 시차 때문에 이른 아침 방송하는 스튜디오를 찾아와준 앤 마리를 비롯한 현지 아티스트와 윤도현, 유해진 등 우리 특별 게스트들의 도움, 부산하지만 설레는 스튜디오의 분위기 등 특별하고 생경한 경험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함께하듯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다시금 30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함께해온 방송에 감사와 경배를 바친다. 라디오 특유의 가족적 관계를 형성한 청취자 입장에서 관찰예능을 즐기듯 <배캠>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라디오 특유의 가족적 관계가 더욱 두터워지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 잠시 잊혔던 추억과 일상을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시간이었다.



참고로 ‘더 디제이’는 특별편성 프로그램이 아니다. <시리즈M>이란 프로그램 자체가 낯설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장수 프로그램이자 MBC 유일한 정규 편성된 교양다큐 프로그램 의 바뀐 이름이다. 이 60분 동안 한 주제를 포착하고 심층적인 정통 다큐멘터리를 추구했다면, 지난 2월 새 단장한 후에는 토크쇼, 팩츄얼 다큐 등 다양한 포맷과 숏폼 콘텐츠로 울타리를 넓혔다. 주제도 연성화했다. ‘더 디제이’ 이전까지는 ‘별의별 인간 연구소’라는 부제를 달고,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안내서라며 no브래지어라는 발칙함으로 포문을 연 다음, 몸치, 정치적 성향, 콘돔, 라면 등등 다양하고 시시콜콜한 주제를 다뤘다. 다만, ‘신개념’을 내세운 방송 콘텐츠들이 그렇듯 일단 변화는 추구하지만 특별한 방향과 인상을 주는 데는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디제이’가 비록 <배캠>의 열혈 청취자가 아니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서사 방식과 소소한 스케일이 다큐멘터리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아쉽지만, 30년간 저녁 6시에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느 방송과 인물에 대한 찬사라는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배캠>은 계절이 돌고 또 돌고, 시간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한참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같은 몇 안 되는 존재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알게 된 일상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깨닫는 이때, 목요일의 터줏대감이던 <해피투게더>도 최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이때, 다양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따스한 저녁의 풍경이 된 방송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 번 위안을 얻는다. 또한 우리 대중문화사에 기념비적인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다음 주 방송도 기다려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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