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 통해 본 중장년 예능이란 새로운 블랙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화제성이 떨어지고, 신선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해피투게더4>의 종영 소식과 유튜브 <구라철>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KBS 예능은 고루한 이미지와 달리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시청률만 놓고 보면 훌륭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1박2일> <살림남> 등 기본 두 자릿수 시청률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3편이나 있고, 주말에는 10%대 시청률 근방에서 오가는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와 또 하나의 장수 예능인 <불후의 명곡>이 그 뒤를 바짝 받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월요일에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향해 파죽지세를 거듭나고 있는 <개는 훌륭하다>와 편성 변경 이후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옥탑방의 문제아들>까지 알짜 라인업을 갖췄다.

흥행 성적 면에서 나무랄 점이 없다. 다만, 이 목록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오늘날 KBS 예능의 지향이다. 지금의 이 호성적의 배경은 젊은 감각이나 화제성, 급변하는 콘텐츠 환경 변화와 같은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온 가족 콘텐츠라는 지상파 채널의 본령에 초점을 맞춘 결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역시나 TV 시청층의 고령화와 상관관계가 있다.



지난해 4월 말 시작해 높은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도 같은 선상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합류한 유튜버 헤이지니를 제외하면 전통요리 연구가 심영순, 농구감독 현주엽, 제주도지사 원희룡, 한복장인 박술녀, 트레이너 양치승, 모델에이전시 대표 김소연 등 중장년층 출연자를 내세우고, 폭넓은 연령층의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다. 여기에 최근 시사용어처럼 쓰이는 ‘꼰대’로 상징되는 세대통합의 가치와 성공한 이들의 삶이란 볼거리를 더하면서 차별화했다. 하지만 <당나귀 귀> 인기의 진짜 비결은 세대론이 아니라 SBS <미운 우리 새끼> <살림남>, TV조선 <아내의 맛>처럼 중장년층 예능 문법으로 만든 캐릭터 예능이란 데 있다.

‘보스들과 직원들의 동상이몽이 담긴 갑을 공감 사이다 예능’이란 기획의도를 내건 파일럿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의 초창기처럼 갑을 관계를 뒤집고, 평소 인식하지 못한 이른바 ‘보스’의 말과 행동을 제3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오는 인식의 간극에 재미의 초점을 맞췄다. 정규편성 이후에도 여전히 이 지점을 볼거리로 삼긴 하지만 젊은 세대, 아랫사람의 시선에서 만들어지는 공감은 찾기 힘들다. ‘보스들의 자아성찰’이 이른바 ‘갑질’의 당사자를 귀엽게 보여주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박술녀나 심영순의 확고한 지시 방식이나 도제 시스템, 자신을 기준 삼아 강하게 푸시하는 김소연 대표 등등 <당나귀 귀>의 에피소드들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이나 갈등요소들이 대거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예능은 이 모든 걸 갑갑보스, 양크루지, 영업왕 등등 재밌는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배경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캐릭터를 더욱 부각할 수 있도록 마카롱 대결, 템플스테이 참가, 이사 도와주기, 제사 음식 마련 등등 각종 이벤트들을 출연자들끼리 연계해 만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당나귀 귀>의 인기를 이끈 일등공신인 현주엽의 대식가 캐릭터다. 방송에서 보여준 지도 스타일은 현대적 전술과 체계적 과학적 선수 관리나 형님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정신력을 앞세우고 권위로 지배하는 코칭은 한국 농구가 세계 농구 흐름과 멀어지고, 프로농구가 마이너 스포츠로 전락한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허나 정작 방송에서는 감독과 선수간의 갈등과 공감보다는 모든 에피소드가 먹방 이벤트로 귀결되면서 대식가 캐릭터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현주엽 감독의 빈자리를 지금은 양치승 관장과 그의 ‘근조직’ 패밀리가 그대로 이어받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기획의도와 달리 특이한 캐릭터 설정과 특별한 이벤트 위주로 방송이 전개가 되다보니 캐릭터는 소위 말하는 보스(갑)의 모든 행동들을 정당화한다. 특이한 사람의 특별한 일상 엿보기다. 시선을 바꿔봄으로써 들여다볼 수 있는 보스의 성찰이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볼 수 있는 지점들은 사라지고, 세대론에 입각한 시각차와 롤 모델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기계발의 효용은 옅어진다. 원래의 세대통합과 공감이란 기획의도에서 다소 변형된 과한 콘셉트의 캐릭터와 이벤트만 난무한다. 즉 시트콤인 셈이다.

<당나귀 귀>는 스튜디오 분위기가 워낙 좋고, 심영순과 박술녀 등 이른바 어르신들의 캐미스트리가 찰떡인데다, 남다른 포부로 볼거리를 선사하는 김소연 대표나 김동은 원장 등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확고하다.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또 기획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 예능의 리모콘 파워에 따른 비슷비슷한 문법으로 흘러가는 점이 아쉽다. 당장의 시청률이 전부는 아닐테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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