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이런 방식의 대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자존심보다는 실리다. MBC 간판 장수 예능 <라디오스타>에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스타들이 출연했다. 되는 장사에 쏠리는 게 이 바닥의 생리인 법. 지난해에 송가인이란 ‘치트키’를 경험한 지상파 예능이 35%가 넘는 시청률과 팬덤을 가진 <미스터트롯>의 스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2주 편성을 예고하며 <미스터트롯>의 팬덤에 승차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대표적 홍보성 예능 프로그램의 한 축인 <해피투게더4>가 문을 닫는 상황에서 <라스>는 첫 수혜의 기회를 얻었고, 결과는 두 자릿수 시청률. 평균 4%대 시청률의 <라스>는 2016년 2월 이후 오랜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그런데 게스트와 대세에 의존하는 이런 대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해 5월 송가인이 출연해 화제가 된 방송과 마찬가지로 흥행은 했지만 정체성은 흐려진 구태의연한 토크쇼의 전략으로 이룬 성과라 평가는 갈린다. 물론, 이 회차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거나, 부족했던 점은 없었다.



같은 시각 TV조선에서는 재방송 중이었던 <미스터트롯의 맛>에서 보고 들은 내용과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나왔지만, 중후한 장민호의 솔직한 ‘시샘’ 캐릭터를 부각하는 등 좋은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김구라의 말대로 <미스터트롯>을 보지 않은 대략 70%의 시청자들이 있으니 입문 단계에 가까운 후일담을 풀어낸 것도 당연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모든 질문의 어미가 “~했다고요?”로 끝나는 사전 인터뷰를 통한 정제된 문답과 에피소드식 토크였다는 데 있다. 준비된 질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예측불허의 재미를 만들던 살아 있는 토크는 사라지고 게스트의 인지도와 에피소드형 토크로 점철된 전형적인 옛날 토크쇼의 문법으로 거둔 성과다. B급 정서, 독설, 깐족, MC진의 티키타카와 같은 <라스>의 특질들은 다 닳아버린 연골이 됐다. 이는 2015년을 기점으로 이미 줄기차게 받아온 비판이기도 하다.



<라스>의 정체성, 그러니까 게스트 띄워주기와 대접을 발로 차버리고 게스트를 앞에 두고 MC들끼리의 투닥거림 대신 게스트에 따라 시청 여부를 판단하는 프로가 됐다. 이는 MC진의 허브였던 윤종신의 하차 이후 더욱 가속화 돼, 대본과 상관없이 발화되던 유기적이고 살아있는 대화는 사라졌다. 이찬원의 말대로 개인기를 준비해 와야 하는 구태의연한 토크쇼다. 앞서 언급한 <해투4>가 종영했으니 이제 유일하게 남은 올드한 지상파 버전 예능이 됐다.

게스트는 그저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실마리일 뿐, 핵심은 늘 MC들의 수다와 입담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뜯긴다’는 표현이 나름 적절했고, 그 과정에서 새롭고 신선한 인물을 발굴해낸 것이 <라스>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송은 지난해 5월 송가인과 함소원이 함께 나온 편과 마찬가지로 다른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에 전적으로 기댄 캐스팅에는 개성이 사라진 <라스>의 오늘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예능 콘텐츠만큼은 시청률이나 영향력이나 콘텐츠 질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지상파가 우위를 점하는 시장이 전혀 아니란 현실을 일깨워준다. 심지어 같은 시간 TV조선에서는 재방송을 돌리고 있을 때 그 주역들이 MBC에 출연해 평소 만져보지 못한 높은 시청률을 안겼다.



최근 TV조선의 서혜진 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미스터트롯>이 성공할 수 있었던 차별성이 대해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권태로워진다. 시청자들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출연자 수십 명의 매력을 발굴해낸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팬덤이 작동한 것이 오늘날 트로트 열풍의 진원지다. 그런데 <라스>의 경우 과거 위대한 유산인 예능 스타 등용문이란 기능이 관성 속에서 옅어졌다. 이례적인 성공이긴 허나 <미스터트롯의 맛> 토크쇼 버전으로 얻은 이번 대박이 과연 즐거울까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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