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신원호·이우정 콤비는 어떻게 시청자 사로잡았나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은 색다른 드라마다. 일단 편성이 그렇다. 보통 주 2회인 일반 미니시리즈와 다르게 주 1회만 방송한다. 방송 요일도 목요일이다. 온갖 불리한 점은 다 갖췄는데도 시청률이 6.3-7.8-8.6%(닐슨 코리아)로 비상하고 있는 점도 평범하지는 않다.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금, 토 주말 밤 주 2회 방송이 시청률 경쟁을 하기에는 가장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이 제작발표회에서 밝혔지만 주인공 의사와 대립하는 인물이 없고 대결도 없는 점도 일반 의학 드라마와는 좀 다르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붙잡는데 최고의 무기를 버리고 승부하는 이 드라마가 잘 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2일 방송하는 4회에는 시청률 10%를 돌파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회를 지나오며 이익준(조정석),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 등 주연들 캐릭터가 어느 정도 구축됐고 정원과 장겨울(신현빈), 송화와 안치홍(김준한) 등 러브라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들에 불씨가 마련돼 드라마적 재미가 더욱 진해질 상황이기 때문이다.



<슬의생>의 이 특이한 승승장구는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콤비 작품이니 그럴만하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도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우정 작가 기획으로 참여) 등 함께 한 모든 드라마가 성공한 불패 콤비라서 이번도 당연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앞선 작품의 화려한 경력이 차기작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기의 이유는 작품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슬의생>은 형식 차원에서 보면 속도감이 상당하다. 한 신 내에서 컷도 신속하게 바뀌고 한 회 기준 적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배치되는데 이 에피소드들을 오가며 전환되는 빈도도 잦다. 이런 속도감은 한 눈 팔 틈을 안 주고 시청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시작하면 곧 ‘순삭’한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 등 앞선 작품에서도 잘 활용된 ‘반전’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린다. 1회 대립처럼 보였지만 좋은 관계였던 정원, 정원 모(김해숙)와 주전무(김갑수), 3회 익준을 좋아하는 듯 전개되다 정원이 대상이었던 겨울의 마음 등 한 회차 내에서도 잔 반전이 몰아치듯 이어진다.

잦은 잔 반전은 앞서 언급한 드라마의 속도감에 힘을 보탠다. 이전 <응답하라>의 남편 찾기 과정처럼 여러 회차 걸쳐 빌드업 되는 긴 호흡의 반전도 준비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드라마 후반부 대미를 향해 고조되는 스토리와 감정선 속에 정체가 드러날 이 긴(큰) 반전은 또 얼마나 찌릿할지 지켜볼 일이다.



내용으로 넘어가 보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해하려면 선입견으로 쉽게 단정하지 않고 그 대상을 꾸준히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하며 존중하려면 대상의 입장이 돼서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듯 그 대상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3회 준완의 아기 환자는 부모가 어리다. 어른 관점으로 보기에는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하는 문제 부모. 하지만 이들도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키려고 하는 점을 준완이 알아가면서 자신도 아기 엄마가 주는 부적도 받고 냉정하게 말하던 버릇도 바꿔보는 등 동화되게 된다.



역시 3회 익준은 뇌사자 장기 이식을 시간 끌며 자정 넘겨 진행하려 하고 장기를 수송하러 온 타 병원 의사들은 이해를 못한다. 하지만 어린이날 사고가 발생, 뇌사자의 아이에게는 앞으로 남은 어린이날이 아버지 기일이 되는 상처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익준 마음을 이해한 의사들은 그 뜻을 따른다.

이런 사람에 대한 이해는 신원호-이우정 콤비의 강점으로 이미 자리 잡은 캐릭터 구축 능력과도 연결된다. 전작들이 큰 사랑을 거듭 받은 이유 중 캐릭터들의 입체감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많이 꼽히는데 이 입체감도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 선입견의 시각으로는 단면적인 캐릭터에 머물기 쉽다.



반면 <슬의생>의 정원을 예로 들면 한없는 선인처럼 보이지만 예민하고 화도 많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다면적인 인간상이다. 현실의 사람은 입체적이어서 시청자는 주변에 있는 인물처럼 친근할 수 있고 또 그 면면의 풍성함으로 인해 매력도 더 많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자존, 희망, 행복 등 긍정적인 가치들과 연결되는데 사람의 가치가 이리저리 치이는 현대사회에 사는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전달한다. 특히 <슬의생>의 공간인 병원은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곳이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이야기들은 울림이 최대치로 증폭되고 위로의 강도도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



슬기롭다와 똑똑하다, 영리하다, 능력있다는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슬기롭다에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지적 능력이 좋다는 의미이지만 나머지는 기능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의미에 머문다.

<슬의생>는 제목에서만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방법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도 슬기롭다. 세상의 이치가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듯하니까. 그리고 이 슬기로움에 시청자들은 높은 시청률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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