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너무 많은 ‘메모리스트’, 전개 빠른 데도 답답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째 시청자들은 저 뒤편에 있는데 드라마 혼자 앞서 달려 나가는 느낌이다. tvN 수목드라마 <메모리스트>는 이야기 전개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그래서 잠시 딴 생각을 하다보면 그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그리고 그렇게 놓친 흐름은 다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만일 <메모리스트>가 기억을 읽는 초능력자 같은 이 드라마만의 설정이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면 이런 전개 속도도 어느 정도 시청자들은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메모리스트>는 룰을 알려주고 그 법칙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개와 반전을 마치 탑을 쌓듯이 올려놔야 하는 그런 성격의 드라마다.



동백(유승호)이라는 기억을 읽는 초능력 형사라는 존재가 있다고 치는 게 이 드라마의 전제이고 룰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집행자 살인을 추적하는 동백과 한선미(이세영) 총경은 자신들이 접하는 사건이 전모가 드러날 때마다 그건 하나의 잔가지였고 그와 연결된 뿌리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예를 들어 지하벙커에서 발견된 한만평이 범인인 줄 알았으나 그 배후에 사이비 교주 박기단(이승철)이 등장하고 그의 범행이 드러나지만 갑자기 사체로 발견되며 진범이 따로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든 건 기억을 지우는 초능력을 가진 일면 ‘지우개’ 연쇄살인마의 등장이다. 진재규(조한철)가 바로 기억을 통제하고 지우는 그 지우개라 여겨졌지만 드라마는 또 다시 그가 저지른 범행이 심상아(이소윤) 가족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게 밝혀지며 진짜 지우개는 따로 있다는 게 드러났다.



<메모리스트>의 사건 전개 방식이 굉장히 속도감이 있는데다 드러난 진실이 또 다른 진실에 의해 뒤바뀌는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건 이 작품이 가진 좋은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매회 죽어나가는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이를 뒤쫓는 동백과 한선미가 계속 헛발만 디디게 되면서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답답해졌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다 그 전개가 오리무중의 복잡함을 지니고 있어 시청자들은 갈수록 피로감이 커진다. 게다가 많은 피해자들이 살해되는 방식이 갈수록 잔혹해지면서 시청자들에 그 끔찍함이 남기는 잔상도 갈수록 커진다. 결국 집중해서 보지 않은 시청자들의 경우는 그 복잡함 속에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메모리스트>는 좀 더 차근차근 시청자들이 납득하고 기억해낼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사건을 진전시키면서 적당한 해소감을 주려 하지 않을까. 흔히 드라마 전개의 빠른 속도는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지만, 시청자들이 그 감정과 이야기에 동승하지 못한 채 드라마 홀로 달려가는 빠른 속도는 ‘정신없는’ 느낌만 줄 수 있다. 특히 인물의 감정들이 제대로 얹어지지 않은 채 흘러가는 속도는 인물들을 마치 작가의 인형처럼 생기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이건 치명적인 연출의 오점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많은 살인들과 사건들 그리고 반전은 어쩌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초능력 형사 동백이나 이 사건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한선미 경감 같은 인물에게는 모두가 납득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의 남다른 기억능력이나 혹은 오래 축적된 정보들은 시청자들과는 다를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메모리스트가 아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 때문에 앞부분에 벌어졌던 사건의 정보들은 마치 지우개 살인마가 건드리고 간 것처럼 지워지고 있다. 이래서야 시청자들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며 즐길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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