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갈’, 너무 많이 죽지만 그렇다고 실감은 별로 없는

[엔터미디어=정덕현] OCN 토일드라마 <루갈>은 정확한 제작비를 알 수 없지만, 누가 봐도 만만찮은 제작비가 들어갔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SF적 상상력을 더하기 위해 마치 미래 세계의 기지 같은 느낌으로 지어진 루갈의 본부를 공간적으로 구현해내는 것도 만만찮았을 것이고, 인공눈, 인공팔, 인공칩, 인공몸을 이식받은 루갈팀들이 아르고스 조직과 싸우는 액션 신이나 거기에 들어가는 CG 비용 역시 많은 투자가 필요했을 게다.

하지만 이런 제작비를 들여서 과연 <루갈>은 그만한 효과를 내고 있을까. 4회까지 진행된 드라마 내용을 보면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한 회당 반 정도를 뼈가 부러지고 피가 터지는 액션으로 채우고 있고, 무엇보다 인공팔 한 방으로 날아가 버리는 액션이나, 어디든 접속해 정보를 빼내고 원거리에서도 드론 같은 카메라가 찍어낸 걸 읽어 들이며 무엇보다 날아드는 주먹을 슬로우모션처럼 보고는 피할 수 있는 인공눈을 가진 강기범(최진혁)의 액션이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다지 긴장감도 또 몰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아르고스의 절대 악처럼 등장하는 황득구(박성웅)가 어째서 무수히 죽어나가는 실험을 통해서까지 인간병기를 만들려하는지 그 내적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황득구가 살해한 아르고스의 회장이던 고용덕(박정학)이 해왔던 일들로 이 드라마가 내세우고 있는 황득구의 목적을 가늠할 수는 있다. 고용덕은 아르고스를 통해 음지에서 세를 확장하고 정치권과 결탁 이제는 유통이나 엔터테인먼트 같은 양지의 사업까지 손을 대는 범죄집단을 키운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주인공이나 그가 속한 루갈 같은 조직의 행동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공적인 의미의 메시지가 사적 목적들과 만나야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황득구는 고용덕과 마찬가지로 막연히 세워진 악당(어찌 보면 첨단기술이 더해진 조폭 정도) 정도로만 그려져,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봐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정도의 분명한 악을 황득구라는 인물이 그려내야, 그걸 막기 위해 뛰어드는 강기범의 액션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야 황득구도 매력적인 악역이 될 테고.



SF까지 포함해 액션에서 악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래서 작품의 절반 그 이상인 경우가 많다. 그 악당이 사실상의 메시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는 콘텐츠 전체를 채우는 액션들에 의미를 더해준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액션은 마치 아수라백작과 싸우는 마징가Z 같은 단순함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내가 아르고스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고 자신도 두 눈을 잃게 되는 일을 겪은 강기범이 루갈에 들어와 아르고스와 대적하는 모습은 이처럼 분명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이 서 있지 않음으로 해서 사적 복수 그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 이런 디테일한 구도와 인물들의 심리들을 잡아내지 못함으로써 드라마는 단순히 루갈과 아르고스의 치고 박는 싸움만을 중계하는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



심지어 ‘초딩 액션’이라는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나온다. 매회 죽어나가는 인물들은 꽤 많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실감이나 긴장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디테일한 심리묘사나 관계들을 풀어내는데 실패함으로써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해서 만들어진 결과다. 과연 <루갈>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엄청난 제작비도 화려한 액션도 디테일한 대본이 없으면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걸 <루갈>은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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