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웰메이드 불륜 드라마의 좋은 예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JTBC <부부의 세계>는 불륜 소재에 막장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다. 전례 없이 6회까지 19금으로 방송될 것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시청 등급에 걸맞게 일반인들의 상식이나 도덕적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강도 높은 불륜 내용으로 전개된다. 막장이라 불려도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화감독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인 남편 이태오(박해준)는 병원 부원장 의사인 아내 지선우(김희애)에 경제적으로 의존한 삶을 살면서 창작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라며 젊은 필라테스 강사 여다경(한소희)과 불륜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아내와 다경 모두를 사랑한다는 궤변으로 가정과 불륜 상대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에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태오는 자신의 생일파티, 어머니 장례식장 등 아내와 함께 있는 공간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다경과 애정 행각을 벌인다. 아내가 구입한 집, 아이의 변액보험까지 담보로 마련한 대출금을 다경에게 쓴 정황도 보인다.



선우는 처음 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방황하지만 분노로 복수를 결심한다. 태오를 무일푼으로 자신의 삶에서 도려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태오의 친구이자 회계사이며 부부가 모두 자신과 절친한 손제혁(김영민)과 잠자리를 갖는다. 이혼 법적 절차에서 필요한 태오 재무 자료를 제혁에게 받아내기 위해 부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용 외도였다.

이 정도면 분명 막장인데 <부부의 세계>에는 막장이란 수식어가 왠지 잘 안 붙는다. 보통 막장 드라마는 내용의 비상식 부도덕한 측면 못지않게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 유명한 사례지만 점 하나 찍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되듯 억지스럽거나 비현실적인 설정이 잦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는 웰메이드하고 세련된 연출이 내용의 막장스러움을 중화시킨다.



전작 <미스티>부터 심리극에 천착한 모완일 PD의 연출은 불륜 상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인 주변인들 각각의 심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극적 긴장감을 방송 시간 내내 유지한다.

이런 연출은 출연자들의 연기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김희애는 상처와 증오가 동시에 깊어지는 과정의 복합다면적인 심리를 압도적 연기로 묘사하면서 드라마를 견인하고 또 한 번 최고 출연작을 갈아치울 기세다. 가해자 태오는 물론 방관자적인 주변인들도 이 불륜에 대한 이기적인 심리들을 잘 표현하며 김희애의 뒤를 받치고 있다.

거듭되는 반전과 속도감 있는 전개도 완성도를 높여 막장을 지우는 데 힘을 보탠다. 영국 BBC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작품답게 미드에서 흔히 구사하는 연속 반전과 신속 전개로 몰입감을 높이고 플롯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특히 초반에 굵직한 사건을 몰아치는 미드 전개 스타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선우가 남편의 불륜 인지, 다경 임신, 둘의 애정 행각 목격, 즉 불륜의 변곡점이 되는 주요 사안들을 겪는데 총 16부작 중 3회가 채 걸리지 않았다. 특히 1회에는 차로 인한 오해로 다경 모친에서 다경으로 태오 불륜 상대가 바뀌고, 태오의 5시 칼퇴근이 불륜 의심-모친 병문안으로 오해 해소-간호사 언급으로 재의심으로 전환되는 등 크고 작은 반전이 겹겹이 채워졌다.

물론 이런 <부부의 세계>에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설정이 없지는 않다. 일단 선우 주변 모든 사람이 태오의 불륜을 알고 있으면서도 태오 편에서 비밀을 철저히 지켰다는 점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 선우가 다경과 서점과 식당 등에서 너무 자주 우연히 마주친다는 점도 드라마 전개를 위해 필요하겠지만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태오 편에서 비밀 지키기는 드라마 향후 전개에 따라 설득력 있는 해명이 이뤄질 수도 있다. 또한 선우와 다경의 빈번한 마주침은 이들이 거주하는 고산시가 타운하우스가 있는 위성 소도시 같은 설정이라 대도시가 아니면 가는 장소들이 한정되기에 꼭 현실감이 부족하다고 할 일은 아닐 수 있다.

자극적인 소재를 짜임새 있는 연출과 빼어난 연기로 풀어내면서 <부부의 세계>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6.3%(닐슨 코리아)로 시작해 4회 만에 14%를 돌파한 초반 시청률 기세는 지난해 종편 드라마 시청률 역사를 다시 쓴 <스카이캐슬>보다 더 강력한 느낌이다.



시청률상으로 <부부의 세계>는 안정권에 접어들었고 이미 성공적인 결과를 어느 정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부부의 세계>는 막장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해보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반 보여준 웰메이드 심리극과, 속도와 긴장감 있는 전개가 종영까지 잘 이어진다면 완성도로 소재의 막장성이 지워지는 사례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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