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계속 보게 만드는 김동욱만의 독특한 흡인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재미있는 부분이 있지만 빼어난 수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과잉기억증후군의 국민 앵커 이정훈(김동욱)과 기억상실증 국민 배우 여하진(문가영)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다. 이정훈의 옛 연인 정서연(이주빈)이 여하진의 절친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서연이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후, 여하진은 그때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 반면 과잉기억증후군 이정훈은 그때의 기억을 잊고 싶어도 절대 잊지 못한다.

<그 남자의 기억법>의 설정은 그 자체로는 감성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는 그 설정을 썩 잘 살리는 편은 아니다. 드라마는 중반까지 계속 스토킹 당하는 여하진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뜬금없이 스릴러적인 긴장감은 넘치지만 텅 빈 이야기들이 채워지는 인상은 아니다. 여기에 매니저이자 여동생 여하경(김슬기)과 조일권(이진혁)의 양념 로맨스도 너무 비중이 높다. 그런데다가 이들이 보여주는 개그코드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는 조일권과 그 앞에서 머리를 푼 여하경의 에피소드 같은 건 PC통신 시대의 유머에서나 통할 법한 콩트다.



여하튼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마력은 있다. 국민 앵커와 여배우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구도. 또 국민 앵커와 여배우라는 직업에 갇혀있지 않은 이정훈과 여하진의 인간적인 매력에서 기인한다. 겉보기에 이성적이고 냉철할 법한 이정훈은 감성적이고 때로는 순정파의 면모를 보여준다. 깍쟁이처럼 느껴지는 여하진 역시 사랑 앞에서는 당차게 직진한다.

또 김동욱과 문가영 역시 본인들의 캐릭터를 매력 있게 보여줄 줄 안다. 배우 문가영은 미니시리즈와 시트콤에서 주인공을 맡아왔지만, <그 남자의 기억법>의 여하진에서 드디어 인생캐를 만난 듯 캐릭터의 매력과 배우의 장점을 조화시킬 줄 안다.



한편 김동욱은 역시 작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MBC 연기대상까지 거머쥔 배우다. 김동욱은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도 MBC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김동욱은 은근히 허점이 많은 이 드라마의 여백을 채우고 특유의 분위기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이정훈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다. 뉴스를 진행하는 국민 앵커의 모습, 직장에서의 냉철하면서도 은근히 유머러스한 모습, 과잉기억증후군 환자의 모습, 은근히 형사 역할도 도맡기에 장르물의 형사 같은 모습도 연기해야 한다. 여기에 여하진과의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멜로의 시선을 보여줘야 하는 모습까지. 마이웨이로 일관된 성격을 보여주는 전작의 우직한 조장풍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기다.



김동욱은 이 다양한 성격을 부드러움의 밀도 안에서 섬세하게 그려낸다. 한 사람의 성격처럼 조율하면서도 각 장면마다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능력도 보여준다. 앵커 이정훈일 때는 뭔가 미소년 버전의 최일구 앵커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한다. 또 직장 선후배들과 시니컬한 대화를 나눌 때면 특유의 무심한 잔재미가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연인 정서연이나 어머니 서미현(길해연)을 잃었을 때의 상처받은 사람의 연기는 그 나름의 또 다른 깊이가 있다. 여기에 여하진이 스토커에 쫓기는 스릴러로 이야기가 변주되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최근 여하진과의 멜로가 무르익는 회차에 이르면 김동욱은 또 한 번 자연스럽게 변화를 준다. 김동욱은 대중들이 흔히 상상하는 남자배우들의 우격다짐 멜로나 실장님 멜로와는 다른 느낌의 멜로를 그려낸다. 그렇다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닭살 멜로 느낌도 아니다. 김동욱이 그려내는 강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편안하게 스미는 자연스러운 멜로는 이 배우의 저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김동욱의 멜로 연기를 통해 어쩌면 새로운 남녀 멜로의 그림을 보여준다고 한다. 꼭 멜로라고해서 뜬금없이 황제가 나타나서 여주인공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면 시작하는 그런 시대는 이제 아니니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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