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가정의 달 맞아 더더욱 특별했던 기억을 걷는 시간

[엔터미디어=정덕현] “처음에는 제가 어머니를 원망도 하고 힘들었어요. 그러다 치매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까, 자꾸 뇌 세포가 망가지니까, 말하자면 어린애로 변해버린 건데, 그것도 모르고 원망하고 했던 것이 후회되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강동구에 사시는 이봉수씨는 치매 노모를 모시고 있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는 그는 가족들에게서 나와 홀로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다. 치매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어머니는 자신만은 기억한다고 했다.

자신을 9살 어린애로 본다는 어머니는 강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송년회를 맞아 가족들에게 보낸 영상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들아. 부지런히 먹고 잘 커라.” 이봉수씨는 그 영상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것이 자랑”이라고 했다.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행복이에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가정의 달을 맞아 특집으로 준비한 건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꽃다발이었다. 프러포즈를 받고 너무 기뻐서 자신도 프러포즈를 해주고 싶었다는 윤재씨의 사연이 가슴 설레는 봄날의 사랑을 담았다면, 사내 커플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 경력이 단절되고 다른 부서로 이동해 일을 하게 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는 정기씨의 사연은 무뚝뚝해 보여도 애틋한 부부의 사랑이 꽃다발에 담겨졌다.

하지만 이번 특집에서 특히 주목한 건 ‘기억’이라는 키워드였다. 우리네 삶이 힘겹고 때론 그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그래도 우리의 기억이 있어 그 유한한 삶을 영원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이봉수씨의 사연이 특히 가슴을 울린 건 바로 그 치매 노모를 모시는 이야기에 더더욱 기억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억이 잠시 돌아와서는 자신을 돌보는 아들 걱정뿐이었다. “진작 죽었으면 아들이 고생 안할 텐데”라고 하셨고 아들은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미안하다는 생각 가지지 말라 했다. 짧게 돌아오는 기억이지만 그 기억에 끝까지 남아있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절대로 잃지 못하는 기억이 있었던 것.

15년 간 치매 할머니를 돌봤던 어머니 이명자씨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한 아들 김선기의 사연 역시 기억을 통해 우리네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어머니가 힘들까봐 요양원 이야기를 했지만 끝까지 돌봐드리고 싶다고 하신 어머니에 대해 김선기씨는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무려 15년을 모셨음에도 어머니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큰 모양이었다. “갑자기 제가 마음에 준비를 했는데도 그렇게 가시고 나니까 못한 것만 마음속에 남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할머니를 끝까지 모신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우리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65세에 돌아가셨어요. 우리 엄마한테 제가 따듯한 밥 한 번 못해 드리고 애들 기르고 하다 보니까, 그래서 그게 너무너무 살면서 마음이 아프고 걸려요. 지금까지도. 그래서 시어머니는 내가 잘 해드려야지 우리 엄마 몫까지 그런 마음으로 하게 됐고..”



어찌 힘든 일이 없었을까. 하지만 자신들이 요양원 보내자고 할 때마다 어머니는 “응 엄마 지금 알아보고 있어”라며 마음을 놓게 하면서 “그렇게 조금 조금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된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잘한 것도 없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셨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잘해드리지도 못했고 그게 항상 마음에 걸리죠. 돌아가시고 나면 옛날 분들이 다 못한 것만 걸린단다 그러시기에, 진짜 나는 못해드리는 거 갖고 눈물 흘리지 않고 마음 아파 안하기 위해서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되지 않더라니깐요. 진짜 죄지은 것 같다 그랬어요. 한결같을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이 절대로 내 마음대로 백 프로 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15년 간 할머니를 돌보고도 못한 것만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저랑 살면서 힘들 때도 계셨고 제가 잘 못 해드릴 때 서운하셨겠지만 이제는 다 내려놓으시고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곳에서 편히 사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못해 드린 거 다 용서해주시고 어머니 그 곳에서 편히 지내세요.” 그렇게 애써 용서까지 구하는 모습이셨지만,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누구나 나이 들고 때론 병도 들며 그렇게 살다 떠나는 게 우리네 조촐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건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냐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말하고 있었다. 그저 쓸쓸히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있는 우리들의 존재. 가정의 달을 맞아 더더욱 애틋해지는 저마다의 기억들로 이 프로그램은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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