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그는 온탕의 구석 한 곳에 앉는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책을 펼친다. <대망>이다. 그는 몸을 욕조에 담근 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품은 ‘큰 꿈’을 따라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끝없이 기다린 끝에 대망을 이뤘다. 오다 노부나가는 통일의 초석을 닦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했지만, 자신의 막부를 연 인물은 그들에게 복종했던 도쿠가와였다.

‘울지 않는 새가 있다. 어떻게 할까?’ 일본인은 세 인물의 성격을 이 물음으로 설명했다. 성질 급한 오다는 새를 죽인다. 꾀 많은 도요토미는 온갖 수를 써서 새를 울게 한다. 참을성이 많은 도요토미는 새가 울기까지 기다린다.

그는 무엇을 기다릴까. 눈은 글자를 따라가지만, 머릿 속에서는 자신의 행보를 되짚고 그려보는 것일까. 일본 전국시대의 판세를 읽으면서 그와 별개로 현재 한국과 자신이 처한 지형을 분석하는 것일까.

나와 내 처지를 돌아본다. ‘나라면 어떻게 해서 새를 노래하게 할 것인가?’ 자문하다가 깨달았다. 그건 내 화두가 아님을. 나는 새장 속의 새라는 걸. 요즘 새장 속의 새는 어떤 주인을 만나도 노래를 부른다. 새는 어떤 주인을 좋아했을까? 어떤 주인 앞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을까?

그를 따라 한 것일지 모른다. 나도 반신욕을 하게 됐다. 지난해 10월부터였다. 반신욕은 기다림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도쿠가와 스타일이 아닌 내게 반신욕은 좀이 쑤시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조에서 나갈 구실을 찾는다. 물이 미지근하면 미지근한 대로,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미지근하면 땀샘에 기별이 가지 않아서 나가고 싶어진다. 뜨거우면 땀이 많이 나고 효과가 일찍 나타나는 것 같다. 자꾸만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나는 반신욕 기준을 20분으로 잡았다. 미지근한 온도에서도 10분이 지나면 땀이 나기 시작하고, 20분이면 충분히 나온다.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반신욕을 20분 넘게 하는 사람은 없다. 나보다 늦게 온탕에 들어온 사람은 전부 나보다 늦게 나왔다는 얘기다. 참고로 반신욕 20분은 땀 600분이다. 1분에 30g씩 빠진다.

하루 20분이라는 간발의 차이가 세월이 누적되면 큰 격차로 나타난다. 습관과 세월의 힘이다. 이 힘은 ‘습관 더하기 세월’이 아니라 ‘습관 곱하기 세월’로 나온다. 그래서 난 쩨쩨해지기로 결심했다. 쩨쩨한 습관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 않는다: 매일 술 마시기, 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술자리 차수 변경, 택시 타기…

한다: 웃는다, 실없는 농담, 치실, 하루에 아스피린 프로텍트 한 알, 틈나는 대로 푸시업, 달리기 강화 훈련, 지하철 출퇴근…

습관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자체로 좋은 습관이다. 다른 하나는 좋은 내용을 채우는 틀과 같은 습관이다. 예를 들어 ‘관성적으로 TV를 보지 않는다’는 습관을 갖게 된 사람은 집에 있을 때 남는 시간을 TV 시청보다 좋은 활동으로 보낸다.

지하철 출퇴근도 틀에 해당하는 습관이다. 지하철에서는 앉지 않는다는 습관은 이미 들인 터였다. 그래서 내게 지하철은 거의 예외 없이 버스와 택시보다 불편하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잠들지 않는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글자를 보거나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출퇴근 시간을 내 몫으로 챙기고 있다.

반신욕을 하며 나는 활이 된다. 활로서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나. 내가 내 시위에 다시 화살을 매기고 시위를 팽팽히 당기기를.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영화 ‘최종병기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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