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간’ 어색한 게 아닌 우리말 오용 늘어…’어지간한’ 대책으론 막기 어려울 듯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그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일에서나 운동에서나 보통 수준에서 만족하는 법이 없다. 취향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값비싼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제품만 몸에 두른다.

그는 자신에게는 깐깐하지만 남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어지간한 일은 맘에 두지 않고, 어지간하면 대범하게 넘어간다. 그는 독려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솔선수범하며 격려하는 데 힘쓴다. 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맡은 부서는 여간 아니게 강해졌다. 그의 부서는 업무를 웬만큼 해두고 끝내는 법이 없다. 늘 최선을 다 한 뒤에도 ‘마지막 한 방울’의 땀을 흘린다. 다른 부서가 웬만해서는 그의 팀을 능가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던 그가 변했다. “일은 어지간히 해 두고 놀자”며 업무보다 휴식과 회식을 더 챙긴다. 술도 늘었다. 냄새만 맡아도 취하던 그의 주량이 웬일인지 여간 아닌 수준이 됐다. 뿐만 아니다. 작은 선물조차 사양했던 그가 이제는 웬만한 ‘성의 표시’는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뜻이 비슷한 세 단어 ‘여간하다’와 ‘어지간하다’ ‘웬만하다’의 용례를 이야기로 풀어보았다.

요즘 이 세 단어를 틀리게 쓰는 사례가 자주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온 미디어의 글에서 몇 가지를 옮긴다.

-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위해 많은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을 전하는 모습이 여간 흐뭇하지 않습니까?”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화자(話者)는 ‘여간 흐뭇하다’는 데 동의를 구한다. 즉, ‘나는 적당히 흐뭇한데, 당신은 어떠신가요”?하고 묻는다.

전혀. 나는 하나도 흐뭇하지 않다. 말을 제대로 했어도 흐뭇할까 말까 한데, 말부터 틀렸다. ‘여간 흐뭇한 게 아닙니다’가 됐어야 한다. 의문형으로 하려면 다음과 같이, 좀 꼬인다.

- ‘여간 흐뭇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어지간하다’로 넘어가자. ‘어지간히 해라’는 도를 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말이다. 왜 그런지 이 ‘어지간하다’가 뜻이 상반된 ‘심하다’ ‘대단하다’ 대신 쓰인다.


- 참 어지간합니다.
- 그 어른들 맹물 마시고 대취하신걸 보면 어지간들 하시다.
- 세종은 육식을 어지간히 즐겼다.
- 신하들은 어지간히 임금의 속을 썩였다.
- 어지간히 세찬 강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웬만큼’도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단어다.

- 웬만큼 독하지 않고서야 3개월 만에 38kg 빼기 어려운데…. (X)

‘웬만큼 독해서는 3개월 만에 38kg 빼기 어려운데…’ 또는 ‘아주 독하지 않으면 3개월 만에 38kg 빼기 어려운데…’가 맞다.

또 ‘~서야’라는 어미 활용이 어색하다. ‘웬만큼 독해서야 3개월 만에 38kg을 빼겠나’가 자연스럽다.

‘웬만하면’은 경계선에 선 단어다.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맞다고 하기도 애매한 곳에 쓰이곤 한다.

- 쇼핑을 하게 될 때 종이 쇼핑백도 웬만하면 받지 않습니다. 꼭 필요할 때에는 집에서 가져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웬만하면’은 주어가 생략됐다. 아마 ‘상황’이나 ‘사정’일 것이다. ‘웬만하면’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꼭 필요하지 않으면’이나 ‘되도록’이 되겠다.

참, 웬만하면(^^) ‘웬만하면’을 ‘왠만하면’으로 틀리게 쓰지 않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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