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동 씨,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언제부턴가 만연하고 있는 ‘아님 말고’ 현상. 이제는 이력이 났을 법도 한데 의혹이라는 낚시가 던져지면 사실 확인도 않고 번번이 덥석 미끼부터 물고 보는 사람들, 올해 들어서만도 대체 몇 차례인지 모르겠다. 물불 안 가리고 죽자고 덤벼들었다가가 누명을 벗고 나면 한다는 소리가 '아님 말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무지한 자들의 만행에 불과하다면 또 그러려니 하련만 지식을 갖춘 전문가 집단들까지 동조하고 나서는 상황이니 기가 막힐 밖에.

인터넷이라는 신통방통한 매체가 우리 사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 얻게 된 혜택들이 무수히 많지만 반대급부 또한 만만치 않는데 가장 큰 폐해가 바로 ‘아님 말고’이지 싶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치 들불 번지듯 한 사람과 그 주변이 초토화 되니 말이다.

국민 MC로 불리며 방송 3사를 누비던 강호동 역시 이 ’아님 말고‘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겠나. 탈세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호재라도 만난 양 앞 다퉈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들은 물론 신이 나서 입방아를 찢던 대중들도 사과의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아니 진심어린 사과는커녕 일본 야쿠자와의 연계를 비롯한 또 다른 얼토당토않은 의혹들을 들고 나왔으니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는가. 그가 느꼈을 상실감을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 것을.

사실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지켜봐온 이들이라면 그가 결코 뭇매를 맞을 사안을 만들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누구보다 대중의 마음을 속속들이 잘 아는 그였으니까. 재미를 주고자 동료들에게는 무례했을지언정 일반인을 대할 때는 언제나 예의를 잃지 않으며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지 않고자 노력하던 그가 아닌가.

의혹에 휩싸이자마자 변명도 없이 서둘러 선언한 ‘잠정 은퇴’ 역시 대중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혹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견딜 수 없었으리라. 억울한 마음이야 필설로 다 할 수 없지만 자신을 지켜보기 거북해할 대중을 위해 즉각 자리에서 내려오는 용기를 보여준 강호동, 그는 과연 언제 돌아올는지.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이들이 있을까? 휴대폰은 약정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신 모델로 교체하고 싶어 안달들이 나고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이며 자동차, 하다못해 집까지도 바꾸고 싶어 늘 애면글면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강호동 하차 당시 빈자리가 크리라는 예상을 깨고 변화에 익숙하며 또 변화를 즐기는 대중은 어느새 강호동의 부재에 재빨리 적응했다.





강력한 리더 강호동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KBS2 <해피선데이> ‘1박2일’은 어느 프로그램보다 더 수월하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메인 코너 ‘무릎팍 도사’가 폐지된 MBC <황금어장>은 ‘라디오 스타’만으로도 순항 중이며,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박미선까지 가세해 이젠 강호동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실정이니 말이다. 그런가하면 애당초 강호동의 ‘강’을 달고 태어난 <강심장>, 이 또한 이승기가 ‘혼자서도 잘해요’를 증명이라도 하듯 단독으로 잘 이끌어 왔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스무 명에 육박하는 게스트들을 쥐락펴락하게 된 이승기를 보고 있자면 그저 대견하기만 하다.

그처럼 기대 이상 선전해준 이승기도 이제 얼마 안 있어 <강심장>을 떠날 예정이란다. 하기야 사정을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본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승기가 떠난다 한들 또 그 자리는 이승기나 박미선이 강호동의 빈자리를 채웠듯이 다른 누군가가 잘 메울 게 분명하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니까.

이승기의 하차 소식이 들리자 이내 강호동의 복귀가 조심스레 거론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돌아올 강호동이니 이왕이면 이승기 하차를 빌미로 본가로 돌아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들이다. 하지만 복귀 시점 결정은 순전히 강호동 본인의 몫이다. 한번 야멸치게 등을 떠밀었던 여론과 대중이 그를 또 다시 흔든다는 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지 싶다.

그렇다 해도 한번 하차한 후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던 선배 최양락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향후를 결정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때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쉼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한 끝에 명성을 되찾은 이경규의 예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강호동, 그가 그립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KBS,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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