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우리 시어머니 차례 상 치우자마자 딱 시계 보시는 거야. 당신 딸 뭐하느라 아직 안 오느냐 그거지. 요즘이 어느 시댄데 며느리 이렇게 부려 먹느냐면서. 아니 당신 딸은 21세기에 살고 며느리는 조선시대에 사냐고. 암튼 우리 어머닌 타임머신 타고 21세기와 조선시대를 왔다 갔다 하시니까. 그래서 시누이 저녁 다 해먹이고 과일까지 다 깎아 바친 다음에 오밤중에 달 쳐다보면서 친정에 갔지 뭐.“

- KBS2 <넝쿨 째 굴러온 당신>에서 차윤희(김남주) 친구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새 주말드라마 KBS2 <넝쿨 째 굴러온 당신>은 한 며느리의 분노어린 하소연으로 막을 열었다. 주인공 차윤희(김남주)의 친구들이 모여 설 연휴 동안 시집에서 당한 갖가지 설움을 털어놓는 중인데, 저 대사에 한 마디 한 마디에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대한민국 며느리가 몇이나 되겠나. 그러나 시어머니 성토대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듯 명절 연휴에 시집 대신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오느라 나름 피곤했다며 친구들의 염장을 지르는 차윤희.

“니들도 알다시피 난 명절에도 갈 시댁이 없잖니. 따뜻하게 잔소리해줄 시어머니가 계시니.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눠줄 다정한 시누이가 있니. 서로 더 효도 잘해보겠다고 아옹다옹 다툴 동서들이 있니. 사람들 북적북적한 데서 토할 때까지 전도 부쳐보고 뼈 빠지게 설거지 해봐야 명절 기분이 나지. 난 니들이 진심 부러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윤희의 얘기에 친구들은 부아가 치밀면서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친구 중 누군가가 윤희가 시집은 제일 잘 간 것 같다며 속내를 드러내는데, 마침 한 친구가 아예 쐐기를 박고 나선다. “원래 이 기집애 꿈이 능력 있는 고아랑 결혼하는 거였잖니!”

그렇다. 윤희는 꿈을 이뤘다. 윤희의 남편 테리 강(유준상)은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인품 좋고 부유한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란 존스 홉킨스 출신의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니까. 윤희는 자신이 바라온 어떤 구속도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 이 ‘완벽한 결혼’을 위해 장남은 당연히 제외, 부모님을 모시길 원하는 차남도, 집은 지방이지만 누님들과 가까이 살 생각이라는 막내도, 심지어 형제들과 우애가 두텁다는 남자도 결혼 기피 대상에 올려 가며 고르고 고른 끝에, 친구 말마따나 재혼 자리 찾아봐야 할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기적처럼 만난 것이다.







능력 있는 고아와 결혼하고 싶다. 가슴 섬뜩한 발언이지만, 그러나 솔직히 이건 드라마 안의 얘기만은 아니다. 예전 며느리들은 장님 삼년,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는 옛말대로 평생을 쥐죽은 듯 참으며 살았다지만 지금은 남편이 차라리 천애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처자들이 수두룩한 세상인 걸 어쩌랴. 멀쩡히 살아계신 시부모님을 돌아가시라고 축수 기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차라리 애당초 부모 없이 자란 고아와 결혼하는 게 백번 낫다고들 한단다.

그런데 이를 어째. 꿈을 이뤘다며 그토록 의기양양해 했건만 그녀의 남편 테리 강이 부모를 찾겠다고 나서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세 들어 살게 된 주인댁 부부(장용, 윤여정)가 테리 강의 친부모일 것으로 짐작되는 바, 복이 달린 넝쿨인 줄 알고 냉큼 주워들었더니만 뒤에 엄청난 대가족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 형국이지 뭔가. 시할머니에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도 둘씩에다가, 시이모도 둘, 시누이 또한 무려 셋이나 되니 기함이라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특히나 엄청애(윤여정) 여사와는 이사 온지 며칠 안 돼 이미 상극임이 입증된지라 파란이 예고되는데 엄 여사의 희망사항을 들어보면 더더욱 걱정이 될밖에.

“나는 맞벌이는 싫더라. 그냥 뒤에서 조용히 그림자처럼 내조만 하는 여자. 들꽃 같고 고요한 여자. 그렇게 차분하면서도 단아하고, 거짓말 같은 건 못하는 진실 되고 참한 여자. 그렇게 맑고 깨끗하고 정직한 여자가 우리 귀남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옆에서 못 챙겨줬으니까.” 시절이 달라졌음에도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만큼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어머니들, ‘시월드’라면 치가 떨려서 ‘시’자가 들어간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며느리들이 공존하는 세상, 과연 <넝쿨 째 들어온 당신>이 지상최대의 이 난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궁금하다. 설마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윤희, 그리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는 건 아니겠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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