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엽·이효리의 ‘만담’을 다시 볼 수는 없을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추억이 사는 기쁨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요즘 정이 가는 프로그램이 드물어서인지 예전에 즐겨봤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자꾸 생각난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 누구에게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프로그램들이 있지 싶다.

매번 포복절도하게 만들던 KBS2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MC 대격돌> ‘공포의 쿵쿵따’며 ‘위험한 초대’, 또 언제나 화제만발이던 MBC <천생연분>도 생각나고, 그립기로 치면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잘생긴 팀’, ‘못생긴 팀’으로 나뉘어 하룻밤을 지새우던 <목표달성! 토요일>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꼽아보는 사이 새삼 느끼게 되는 건 기억에 남는 여자 진행자가 드물다는 사실. 물론 이영자나 박경림처럼 물불 안 가리고 스스로를 던져가며 시청률 상승의 견인차 노릇을 해준 이들도 분명 있었지만, 또 그 후 여성의 막강 파워를 증명한 KBS2 <해피선데이> ‘여걸 파이브’ 같은 프로그램도 나왔었지만 그 외에 태반은 프로그램을 주도하기보다는 남자 MC의 진행을 거드는 정도에 머문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나 미모가 뛰어날 경우 아쉽게도 화초 역할에 그치곤 했는데, 그랬기 때문일까? 2001년 KBS2 <해피투게더 1> ‘쟁반 노래방’ 출발 당시 전격 기용된 아이돌 가수 이효리, 그녀의 활약을 크게 기대하는 시청자는 별로 없었다. 이곳저곳 초대 손님 자격으로야 자주 모습을 드러냈지만, 또 그때마다 남다른 예능 감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행 능력을 검증받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제까지의 가수나 연기 경력을 지닌 여자 MC들의 전철을 밟아 곱게 차리고 나와 대본에 따라 남자 MC의 말에 맞장구나 치고 적당히 리액션이나 해줄 줄 알았던 것.

그러나 이번 <해피투게더 3> ‘10주년 기념 특집’에서 신동엽이 누누이 밝혔듯이 그녀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전철을 밟기는커녕 놀랍게도 신동엽과 견주어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진행 솜씨를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청순과 섹시를 오가며 수많은 남성들을 열광케 만든, 우리나라 가요 역사에 길이 남을 걸 그룹 ‘핑클’의 멤버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길게 누워 자는 상태로 오프닝을 하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나.











이효리와 신동엽은 그야말로 찰떡궁합, ‘척보면 압니다’라는 오래된 유행어만큼이나 죽이 척척 맞았었다. 재치 넘치는 설전이 벌어질 때면 만담 콤비 장소팔 고춘자가 따로 없었으니 그 두 사람이 ‘쟁반 노래방’을 통해 펼친 활약상은 가히 전설이 아닐는지. ‘공포의 쿵쿵따’를 비롯해 추억에 빛나는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하의 유재석이지만 ‘쟁반 노래방’으로는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주저되는 바, 이는 아마도 진행 능력보다는 이효리의 유무가 관건이지 싶다. 나중에 특집으로 초기 MC 두 사람이 진행을 맡아준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때 “그래, 바로 이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

그랬던 그들이 ‘10주년 기념 특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시나 환상의 입담과 재치, 그리고 궁합이었다. 생각해보라. 누가 이 시대의 아이콘 이효리에게 감히 ‘음탕’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던질 것이며 또 이효리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처럼 털털하니 웃으며 “음탕이 뭐에요?“ 하고 넉살 좋게 받아 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루머와 스캔들에 질렸을 법도 한데 “황당했던 건 없고 대부분 사실이었는데요?”라고 쿨하게 넘길 수 있는 그 배짱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아쉬운 건 ‘쟁반 노래방’에서 동반 하차한 이래 두 사람의 만담(?)을 다시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다운 것일까? 그렇다 해도 나는 언젠가는 이 명 콤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다시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은 신의 선물을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또한 무엇보다 이 두 사람이 세상을 좀 더 즐겁게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KBS2]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