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안함과 소탈함이 더 어울리는 연기자, 서지석

[엔터미디어=정석희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서지석에겐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무표정일 때는 더 없이 냉정해보이지만, 하지만 일단 웃기 시작하면 눈가에 주름이 잡히면서 이내 착한 동네 오빠로 바뀐다. 운동선수였던 그가 돌연 방향을 돌려 택한 길은 연기. 시작부터 일일극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며 탄탄대로를 걸었지 싶지만 사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의 윤지석 역으로 자신감을 얻기까지 그 역시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맛 봐야 했다고. 한 여자에게 올인하는 윤지석과 닮은꼴이라는 그, 그래서 이번 역할에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다는 그를 <하이킥!>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인터뷰: 정석희 칼럼니스트)

Q: 실은 지난해 tvN 가 방송될 때 만나고 싶었습니다. 몸에 맞는 옷을 비로소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A: 즐기며 찍은 작품이에요.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한’이라는 외강내유형 캐릭터와 제 실제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힘들기는 했어도 재미있었어요. 아무래도 케이블 채널이다 보니 관심이 덜해 아쉬움은 남죠. 아버지와 헤어진 정민이라는 남자 아이를 보듬어 주는 역할이었는데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격의 없이 가깝게 지냈거든요. 주말이면 함께 목욕탕에도 가고 야구, 축구, 달리기 시합도 했던 기억이 나요. 문득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정민이 역의 구승현 군이 저를 많이 따랐어요. 아직 어려서 촬영장이 낯설고 딱히 누가 챙겨주지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차에 태워서 함께 이동하고 밥도 같이 먹고 했었죠. 늘 붙어있어서 그런지 상대 여배우들보다도 구승현 군과 호흡이 더 잘 맞았죠.



Q: 의 이한이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윤지석으로 자연스레 이어졌지 싶어요.
A: 사실 <하이킥> 초반에는 신이 100개가 있으면 98개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신이었어요. 목도 항상 쉬어있고 모니터를 해보니 저 혼자만 붕 떠 있는 느낌이더라고요. 시트콤이 처음인지라 적응 못하고 헤매는 시간들이 있었죠. 또 한 번 '발연기'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로 인해 새삼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마음을 다잡고 연구를 해가며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애썼고, 차차 캐릭터가 잡히다 보니 좋은 평가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다행입니다.

Q: 그렇다면 힘들었던 작품은?
A: 제대 후 첫 작품이죠. SBS <산부인과>가 가장 힘겨웠어요. 떨리고 긴장되고 대본을 수십 번 분석해 갔는데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는 게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심지어 밥 먹는 신에서는 하도 떨려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죠. 2년 6개월 만의 촬영이었는데 그새 드라마 제작 시스템도 많이 바뀌어있더라고요. 그나마 상대역인 장서희 씨가 베테랑이다 보니 캐릭터 잡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의학 용어들은 왜 그리 어려운지. 그리고 제 역할이 불임클리닉 의사잖아요. TV 드라마치고는 적나라하고 민망한 표현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던 거, 혹시 기억하세요? 듣기만 해도 뭐한 대사들을 제 입으로 해야 하니 얼마나 쑥스러웠겠어요.

Q: 어쨌든 '발연기'라는 오명을 극복해낸 셈이죠?
A: KBS <열아홉 순정>은 처음으로 저에게 바스트 샷이 뭔지, 클로즈업이 뭔지, 드라마 촬영의 기본을 알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전에 소소하니 출연을 하긴 했지만 연기다운 연기로는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대본 외우기만도 벅차서 뭔가를 분석해서 쏟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거죠. 군대 가 있는 동안 왜 내가 그렇게 밖에 못했지, 줄곧 자책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연기는 진심을 담은 연기가 아니었던 거예요. 발연기라는 소리, 당연해요. <산부인과>와 MBC <글로리아>를 거치는 사이 저 혼자 준비 한대로만 하는 연기가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하는 연기를 배우게 됐어요. 사실 제가 정확한 발음, 발성이 많이 약해요. 20대 초반까지는 말을 더듬기도 한 걸요. 고치는데 만 5년 걸렸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든지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씩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Q: 연기에 도움을 준 동료가 있나요?
A: <글로리아> 때 상대역 배두나 씨와 연기하면서 ‘아!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이런 거구나. 상대배우가 주는 걸 이렇게 받아가며 연기하는거구나.’ 깨닫게 되었죠. 그 전에도 배두나 씨가 굉장한 매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연기하는 동안 참 배울 점이 많은 배우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존경심까지 들었습니다.

Q: MBC <아일랜드>에도 출연했더군요.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봤는데 왜 기억이 안 나죠?
A: 거의 매회 나온 걸요! 김민정 씨 큰 동생 역할이었어요. 놀고먹는 백수라서 김민정 씨 집 장면마다 등장했는데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연기가 아니었던 거죠.



A: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군대 가 있는 동안 모 배우의 발언으로 인해 괜한 오해를 샀잖아요? 해명을 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라서, 당황스러웠겠어요.
A: 제가 아닌 거 아시죠? (웃음) 그 얘기가 나온 게 훈련소에 있을 때였어요. 훈련병, 이등병 시절이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마침 100일 휴가 때 팬 미팅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을 하면 그분에게 실례가 될 것 같더라고요. 팬들을 포함, 저를 아는 분들이라면 사실이 아님을 잘 아실 테니까요. 하지만 억울했던 건 연기도 못하면서 작품에 집중은 안 하고 여배우에게만 신경을 썼다는 식의 기사였어요. 속이 상했죠. 이제 지난 일이라 크게 신경은 안 써요.

Q: 지난해 SBS <일요일이 좋다>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도전했을 당시 칭찬보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더 많이 받았는데요.
A: 스케이트는 난생 처음이었는데 사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비난이 쏟아졌던 게 파트너 없이 혼자 링크에 오른 1차 경연 때인데요. 변명을 하자면 다른 분들은 이미 한 달 이상 연습을 한 상태였어요. 저는 2차 경연 때 까지 촬영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아시잖아요. 드라마 스케줄이라는 거. 딱 한 번 타보고 경연에 임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참가했다가 쓴 소리 많이 들었죠. 당연한 일입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 후 두 달 동안은 죽을 만큼 열심히 했지만 기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결과가 좋지는 못했어요. 아쉽습니다.



Q: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서 탈락하던 날이었을 거예요. 관람 차 오신 어머님이 화면에 잡혔었는데 참 미인이시더군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A: 어머니는 정말, 정말 착한 분이세요. 아버지와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어 싸우신 적이 없거든요. 저는 아직도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계셔야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늘 강조하셨죠. 활동적인 일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한다고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사고를 쳐도 크게 혼내시지 않으셨어요. 엄하신 편이라 형과 함께 무릎을 꿇고 혼났던 적이 많은데 고분고분했던 형과 달리 저는 제 생각이 맞다고 판단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인터뷰는 2편으로 계속 됩니다)


인터뷰: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리: 유리나 기자
사진: 전성환 기자


[사진=tvN,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