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가수다'를 불편하게 보는 이상한 시선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조영남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가수다'에 대해 '최악의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했다. "가수들 노래를 갖고 점수를 매겨서 떨어뜨리는 것은 덜 돼 먹은 생각"이라는 게 그의 요지다. 그는 또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선의가 있다고 해도 이런 프로그램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인터뷰에서 자신이 진행하는 '명작스캔들'에 대해서 "이제껏 내가 진행한 프로그램 중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하면서 "100% 순수예술만 얘기하는 가장 고급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 두 진술에는 이상하게도 예술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들어있다. 즉 '나는 가수다'에 대해서는, 가수들이 하는 노래를 '예술'로서 마치 성스러운 어떤 것으로 추켜세우고 있는 반면, '명작스캔들'이 지향하는 순수예술의 대중화에는 선선히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조영남은 '명작스캔들'이 그 소재 자체가 명작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명작이 가진 아우라를 추켜세우는 프로그램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오해다. '명작스캔들'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명작의 아우라를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프로그램이다. 조영남이 이 프로그램의 MC로 앉아있는 이유도 바로 그거다.

즉 조영남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가수다'는 바로 이 음악과 가수의 아우라가 예능의 형식 속에서 발가벗겨지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명작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복제가 일상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예술이 가진 아우라의 상실은 숙명적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안타까워하지만, 벤야민은 이 성스러움, 즉 아우라의 상실에서 오히려 민중들의 희망을 보았다. 성스러움이 갖는 권력의 틀을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예술이 행하는 권력의 정치학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나 노래하고 누구나 무대에 서고 잘 하면 가수가 될 수도 있는 시대다. 가수는 특권으로 상징되는 예술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더 이상 아니다.

조영남은 '나는 가수다'의 노래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에 반감을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노래에 점수를 매기는 것을 일상처럼 해왔다. 조영남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최고의 히트곡, '화개장터'로 떴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물론 순위에 대한 문제제기 때문에 음악 프로그램은 순위보다는 '인기'라는 말로 대치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비주얼과 춤에 더 몰두하는 음악 프로그램들의 편향은 순위보다 더 무섭다. 음악 프로그램이 아이돌 무대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노래하는 가수들'이 그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 것은 완벽한 '배제'라는 점에서 '낮은 순위'보다 더 참혹하다.

사실 '나는 가수다'가 가진 서바이벌 형식은 이미 대중들에 의해(어쩌면 대중을 호명하면서) 만들어진 각종 순위 음악 프로그램에서 늘 가수들이 겪었던 일들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이고 멋진 가창력의 소유자가 불렀다고 해도 결국은 대중들이 선택한다. '나는 가수다'는 그 방식을 하나의 프로그램 형식으로 끌어들인 것뿐이다. 한 명이 탈락한다고 해도 그 탈락자 역시 가수다. 가수들이 서바이벌 형식 속에서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최고의 무대를 대중들에게 선사한다면 그것이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기성가수라고 해서 탈락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이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려 노력하고 탈락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면, 기성가수들도 탈락을 감수하고라도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려한 그 노력은 똑같은 가치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기성가수들은 과연 탈락조차 될 수 없는 성스럽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권위의 존재들인가.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을 앞에 앉혀두고 그토록 심한 독설을 마음껏 해대고는 정작 자신이 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하는 건 무슨 시대착오적인 특권의식인가.

물론 '나는 가수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서바이벌 형식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왜 굳이 그런 경쟁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나, 그 프로그램이 암묵적으로 대중들에게 경쟁의식을 내면화 한다거나 하는 점들은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인은 되고 기성가수는 안 된다는 식의 특권의식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논점은 '나는 가수다'의 기성가수들을 놓고 벌어지는 서바이벌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가, 즉 서바이벌 형식을 갖고 왔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보여주려는 점이 제대로 잘 드러나고 있는가 같은 것이어야 한다. 희한한 일이지만 '나는 가수다'는 조영남이 우려한 것과는 상반되게 오히려 가수들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 무대에서 '바람이 분다'와 '너에게로 또 다시'를 완전히 자기 식으로 부르는 이소라를 재발견했고, 노래에 감정을 제대로 실어 부르는 백지영을 발견했으며, 어떤 다른 장르의 노래라도 자기 식으로 소화해내는 정엽, 김범수, 박정현을 발견했다. 즉 '나는 가수다'가 바로 이 제목에 걸맞게 가수들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균형감각을 잃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음악 프로그램들이 하지 못한 것을 예능 프로그램이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를 무례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권위의식이 엿보인다. 누가 감히 나를 평가하느냐는 말은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지만, 특히 자신이 기성가수라는 점을 내세워 붙이는 이 말에는 대중들에 대한 무례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심지어 그렇게 대중들과 소통하려 최선의 무대를 만들려 노력하는 가수들에게도 큰 무례가 아닐 수 없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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