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밴드2’, 프로 인디밴드가 몰려든 진짜 이유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KBS ‘톱밴드 시즌1’에는 프로 밴드의 출전제한이 있었지만 아마추어 밴드만 참가한 건 아니다. 아시아밴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입상 경력을 지닌 브로큰 발렌타인과 야수의 울부짖는 듯한 보컬로 다크 로컨롤을 구사하는 게이트 플라워즈는 이미 프로페셔널이었다.

요즘 접수를 받고 있는 ‘톱밴드 시즌2'에 오면 프로급 밴드들의 출연이 대거 눈에 띈다. 몽니, 네미시스, 네바다51, 데이브레이크, 타카피, 슈퍼키드, 애쉬그레이, 바닐라시티, 쿼츠, 시베리안허스키 등 이미 수많은 마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밴드들이 출전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엔트리인지, 록페스티벌 출연진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프로 밴드의 출전 제한을 철폐하자 인디신의 실력파 밴드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슈퍼스타K3'에 출연해 톱10에 올랐지만 합숙 도중 무단이탈해 탈락한 예리밴드도 출전한다. 이렇게 되면 ‘슈퍼스타K4'에 ‘톱밴드' 우승팀인 톡식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프로급 밴드들이 대거 출전 신청을 하자 제작진도 1차부터 바로 배틀에 돌입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의 코치제를 폐지하고 친구처럼 옆에서 도와주는 멘토제나 매니저제를 활용할 계획이다.

실력파 프로 밴드들이 아마추어의 등용문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거 나온다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이 우승상금을 노리고 나오는 건 물론 아니다. 굳이 출전 이유를 밝힌다면 ‘우리에게 무대를 달라'는 절규이자 촉구이며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음악동네가 주류는 아이돌 가수 위주였지만 노래 잘하는 가수, 노래를 오랫동안 부른 선배가수들에 대한 배려가 없지는 않았다. 박정현 김범수 이소라 등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은 ‘나는 가수다'를 통해 배려받은 느낌이 들고 복고형 가수와 올드가수들도 ‘콘서트 7080'이나 ‘가요무대'라는 방송 영역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밴드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혜택이 없다. 굳이 따진다면 인디밴드가 설 수 있는 방송 무대는 EBS의 ‘스페이스 공감' 정도다. 하지만 여기도 다양한 장르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무대이지 밴드 뮤지션의 전유물은 아니다.

음악은 널리 알릴 수 있는 도구인 보편적 방송을 확보해야 하는데 밴드음악은 그렇지 못하다. 이 점은 데이브레이크의 출전 이유를 보면 금세 나타난다. 록, 팝, 재즈를 넘나드는 음악을 구사하며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4인조 밴드 데이브레이크는 “꽤 오랜 시간 음악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중들은 우리를 포함한 밴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양한 음악들이 존재함을 알리고 싶었고, 홍대 신 뿐 아니라 보다 넓은 대중들에게도 밴드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원하게 되었다.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 시작점이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참가의 뜻을 밝혔다.
 


‘톱밴드'는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주말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매주 1시간 이상 밴드음악의 연주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건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대중들에게는 대단한 매력이었다. 악기의 앙상블과 하모니를 느낄 수 있었다. 밴드라는 음악적 소스는 매우 중요하다. 단조로운 음악에 다양성을 입힐 수 있다.

지금 K팝한류는 아이돌 가수들이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까지 아이돌의 K팝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SM, YG, JYP, 큐브 등 경쟁력 있는 아이돌 가수를 만들어내는 기획사들이 좁아진 내수시장의 한계를 뚫고 외국으로 나가 K팝이라는 브랜드로 국가적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한류의 길을 연 것은 사실이다. 사생팬의 스토킹 속에서도 JYJ가 이뤄낸 남미 공연은 그 소식만으로로도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아이돌 음악만으로는 안 된다.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비주얼과 퍼포먼스는 현재로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비교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며 이들의 가창력도 갈수록 업그레이드되고 있지만 이들 음악으로만으로는 장기적인 흥행과 유행을 이어가기 어렵다.

멀지않아 한국에서는 귀엽고 잘 생긴 젊은 남녀 가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음악밖에 없냐고 할지도 모른다. 대중문화에서 한 장르로 쏠리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낳기 마련인데 K팝 한류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 음악계에는 조용필, 신승훈, 이승철, 김건모, 이소라, 이문세, 임재범, 심수봉 같은 레전드급 가수들이나 국카스텐, 10cm, KBS ‘탑밴드‘에 출연했던 인디가수들의 음악도 있다. 이들도 K팝의 하나다. ‘톱밴드'를 통해 적어도 K팝에는 다양한 장르나 스타일의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재야의 고수'가 된 실력파 프로 밴드들의 활약이 시즌2에서 기대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해피로봇레코드(데이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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