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의 별자리 스토리] 이요원은 물의 성질을 가진 배우다. 촉촉함. 그것이 이요원이 대중들에게 던지는 매력적인 느낌이다. 그 물기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서 폭발적으로 보이지만, 무표정하게 마치 삶을 초탈한 듯한 얼굴에서도 여전히 느껴진다. 심지어 한없이 맑고 쾌활하게 웃음을 던질 때조차 그 가슴 한 구석으로는 이 촉촉한 물기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얼굴. 입을 앙다물고 웃으면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을 때, 그래서 웃음과 무표정의 겉면으로 드디어 숨겨진 물기가 차오를 때, 그녀의 연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이요원은 처음으로 그 웃음의 겉면 뒤에 숨겨진 눈물을 보여주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환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어찌할 도리 없이 소녀 같은 그 모습은 차츰 앙다문 입술로 성장해가고, 그렇게 단단해질수록 본래의 모습인 눈물 많은 소녀는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그 얼굴에는 조금씩 우수가 깃들게 된다. 봉달희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심장병 전문의. 이 캐릭터는 완벽하게 이요원이 가진 이미지들을 빨아들인다. 즉 두근거리는 소녀의 심장과, 아픈 심장을 동시에 가진 그녀가 그 누군가의 아픈 심장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아픈 심장들을 위해 온몸을 던지지만 정작 자신이 아픈, 봉달희라는 캐릭터로 그녀가 대중들에게 한 발작 다가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부터 이요원의 이미지는 조금씩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영화 속으로 들어온 '봉달희'였다. 철철 피 흘리며 쓰러져가는 사람들 속을 뛰어다니며, 부들부들 떠는 그 손길은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안타까움이었다. 광주의 한 복판에서 그녀의 하얀 가운이 붉게 물들어갈 때, 그리고 환자 앞에서도 가녀리게 느껴지던 그 손이 총을 들고 불불 떨 때, 그것은 이요원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백지처럼 순수한 내면이 어떤 극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더 절절한 핏빛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이요원은 그 숨겨진 물의 성질을 드러냄으로써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그 물의 성질이 때로는 차고 넘쳐 심지어 어떤 광기가 될 가능성도 드러냈다.



'못된 사랑'은 물의 성질을 가진 이요원이 너무 깊은 멜로의 눈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 보일 수 있는 위험성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못된 사랑'은 그 눈물의 틀 속에 이요원을 가두었고, 그러자 그녀는 눈물에 매몰되었다. 봉달희가 가진, 물기 속에서도 타오르던 열정 같은 건강함이 사라질 때, 그녀의 눈물은 의미가 퇴색됐다. 눈물을 머금고 있을 때 빛나던 얼굴은 철철 흐르는 눈물 속에서 빛을 잃었다.

'선덕여왕'은 그 물 속에 빠졌던 이요원의 강건함을 다시 물 밖으로 끌어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녀는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사극의 전장 속 진흙탕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몸을 던지는 연기 속에서 감정에 매몰되던 눈물은 다시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여왕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로소 감정만이 아니라 몸을 던지는 그 연기자로서의 성장과정을 통해서이다.

'49일'은 그녀의 또 다른 모험이다. 그녀는 여기서 해맑음과 슬픔으로 뭉쳐진 자신의 이미지를 두 인물로 분리해낸다. 한없이 죽음을 향해 발을 딛는 송이경이 슬픔의 결정이라면, 끝없이 살기 위해 발랄한 삶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신지현은 해맑음의 결정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성질의 캐릭터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차츰 정반대로 이동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송이경은 절망의 끝에서 삶을 향한 에너지를 찾게 될 것이고, 신지현은 해맑음 속에 숨겨져 있던 삶의 절망적인 섬뜩함을 발견해낼 것이라는 기시감. 해맑음과 슬픔. 그녀가 가진 물의 성질은 자신이 가진 이 양극단의 성격을 어떻게 조절해낼 것인가. 만일 '49일'의 이요원이 이 두 성격을 자유자재로 선보이게 된다면, 어쩌면 그 49일은 이요원에게도 새로운 연기자로서의 부활의 시간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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