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이는 훌륭한 인재가 아닌가. 근데 지금 덜컥 애를 낳아 가지고, 너무 아깝지 않나. 그리고 애를 낳아서 무슨 돈으로 키울 건가. 이 집 마련할 때도 우리가 안 도와줬으면 자네가 얼마나 어려웠겠나. 조금 더 안정이 되고 나서 자녀 계획을 해도 늦지 않을 걸세.”

- tvN <롤러코스터 2> ‘한국인 탐구생활’, ‘장서갈등’ 편에서 장모(최완정)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KBS2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어릴 적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은 남편을 배려해 미국행을 과감히 포기한 주인공 차윤희(김남주). 시어머니(윤여정)가 감격에 겨워 며느리의 손을 부여잡고 고마움을 표했지 싶지만 어디 삶이라는 게 그리 녹녹하던가. 감동은 잠깐, 고부간의 갈등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웃으며 사람 잡는다고 나긋나긋한 어조로 전화를 걸어 현관 번호 키를 대라는 시어머니. 도움을 주시기 위함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멀리도 아닌 엎어지면 코가 닿을 앞집이다 보니 파란이 예상되는 것이다. 알려줬다가는 사생활 보호는 물을 건너갔다고 봐야 옳을 터, 일생의 목표인 ‘능력 있는 고아’와의 결혼으로 쾌재를 불렀던 차윤희로서는 뒷목을 잡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꽃노래를 흥얼거리며 비단 길을 걷다가 하루아침에 진퇴양난에 빠져버린 차윤희,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처럼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여자들이 호환마마보다 더 질색을 한다는 시집 얘기를 다루고 있다면 tvN <롤러코스터 2> ‘한국인 탐구생활’, ‘장서갈등’ 편에서 주인공 정형돈이 맞닥뜨린 상황은 그와는 정반대인 요즘 젊은 부부의 이혼사유 1위라는 장모와 사위 간의 피 말리는 갈등이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고부갈등으로 인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사이 한쪽에서는 새로운 갈등이 야금야금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사위 사랑은 장모라느니, 사위가 백년손님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지 싶은데 처가의 도움 없이 육아와 맞벌이를 병행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통에 ‘장서갈등’이라는 신풍조가 탄생한 것이라고. 아내 입장에서 마음 편한 친정 쪽에 아이를 맡기는 일이 흔하다보니 예전 같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일어날 감정 대립들이 장모와 사위 사이에도 만연할 밖에.







아무리 결혼할 당시 물심양면 도와주었다고는 하나 가정경제는 물론 가사일이며 심지어 자녀 계획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나서니 딸은 편할지 몰라도 사위야 거북하기만 하다. 특히나 능력도 없는 주제에 언감생심 무슨 아이 욕심이냐는 다그침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겠나. 따라서 최근 급속도로 높아진 이혼율에 장모들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시절이 달라져서 예전 같으면 출가외인을 되뇌며 딸을 도닥이던 친정어머니들이 이제는 더 이상 참고 살 이유가 없다고 오히려 호통들을 친다는 것.

어쨌거나 처가와의 교류가 잦아질수록 아내가 아닌 장모와 결혼을 한 게 아닌가 싶어진 정형돈. 장모님이 오실 적마다 별의 별 핑계를 다 대가며 귀가를 미룬 채 집 밖을 배회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공감한 이 시대의 사위들, 꽤 많지 싶다. 그러나 고부갈등과 장서갈등, 둘이 다른 얘기 같지만 실은 같은 맥락의 문제로 보는 편이 옳다. 이미 성인이 되었고 더구나 혼인이라는 절차로 제 짝을 맞은 자식을 아직도 품 안의 자식으로 여기는 부모들, 그리고 새 가정의 주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 덕 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식들로 인한 악순환이 결국 이 모든 갈등의 단초일 테니까.

돌아온 <롤러코스터 2>의 첫 코너는 이처럼 2012년 현재 한국인의 생활 공감을 생생히 전하는 ‘한국인 탐구생활’이다. 1편에서는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10대 패딩문화’를, 2편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신혼 문화를 담은 ‘허니문 푸어’를, 3편에서는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외모라는 벽에 부딪히는 ‘취업성형‘을 그렸는가 하면, 새로운 가족 문제로 등장한 ‘장서갈등’을 다룬 4편에 이어 전 국민 사이에 불어 닥친 오디션 신드롬을 다룬 ‘연예인 열풍’의 5편까지 방송되었는데 아마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공감도가 다르지 싶다.

내게 가장 와 닿은 에피소드를 꼽자면 2세를 낳을 자연적 욕망마저 몰수당하는 서글픈 ‘허니문 푸어’ 편과 ‘장서갈등’ 편. 생각해보니 이 또한 출가를 앞둔 자식들에 대한 연연함에 기인했지 싶다. 에고, 좋은 시어머니며 좋은 장모가 될 생각보다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길러내고 존중하겠다는 다짐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건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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