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수백년 전의 ‘이름 없는 이름’에 집착하는가?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고 원용된 전술을 폈다. 이순신은 작전대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 우선 적에게 기습을 당해 백병전을 허용하는 경우를 막아야 했다. 학익진을 펴려면 적과 너른 바다에서 맞붙어야 했다.

이순신은 공수 두 측면에서 모두 일본 수군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본 수군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다각도로 촉각을 가동했다.

이순신역사연구회는 <이순신과 임진왜란1>에서 “이순신이 넓은 경계망과 탐색망을 24시간 가동했다”고 전한다. <난중일기>에는 곳곳에 정보 수집에 기울인 노력이 드러난다. 몇 대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새벽에 망보는 군졸이 내 앞으로 와서 견내량에 적선 10여 척이 넘어왔다고 보고하였다.”

“늦게 본영의 탐색선이 돌아왔다. 광양 두치 등의 지역에는 적의 그림자도 없다고 한다.”

“부산 허내은만의 보고서가 왔는데, 경상좌도 각 진의 왜군이 벌써 모조리 철수하여 떠나고 다만 부산의 왜군만 남았다고 하였다. … 허내은만에게 쌀 10말과 소금 한 곡을 보내 주고서 성심껏 염탐하여 보고하라고 일렀다.”

“벽파정 맞은 편에서 연기가 올랐다. 배를 보내서 실어 왔는데 (연기를 피워 올린 이는)바로 임준영이었다. 그가 정탐한 결과를 보고하기를, ‘전선 200여 척 가운데 55척이 먼저 어란포로 들어왔습니다’하였다.”

나는 전에는 허내은만이 항복한 왜인인 줄 알았다. <난중일기>에는 항왜(抗倭)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얼마 전 다른 일로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내은만’과 ‘내은덕’이라는 이름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자로는 內隱萬과 內隱德이라고 쓴다. 허내은만은 조선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內隱은 이두식 표기로 짐작된다. 이름 중 돌석을 乭石으로, 엇쇠를 __金으로 쓰는 식이다. <난중일기>에는 돌손(乭孫), 놈쇠(老音金)라는 이름도 보인다. 이두식으로 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음으로 읽히는 한자가 없는 것이다. 그럼 許內隱萬은 허낸만으로 읽었을까? 우리 이름으로 ‘낸만’은 귀에 매우 설다.

허내은만 이름 읽는 법을 궁리하다 인터넷에서 <난중일기> 한자 원문을 접했다. 이 자료는 허내은만을 許乃萬이라고 전했다. 이 자료가 맞다면 내 궁리는 첫 단추를 잘못 꿴 일이 된다. 그의 이름은 연구가 필요 없이 ‘허내만’이다.

포기는 이르다. 나는 <난중일기>를 편집한 송찬섭 방송대 교수께 문의했다. 송 교수는 “許內隱萬이 맞는 것 같다”고 회신했다.

<난중일기> 원문과 관련해 한국고전번역원에 문의했다. 고전번역원은 “<이충무공전서>에는 許乃萬이라고 적혀 있고 許內隱萬은 나오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을 송 교수께 전하며 정확한 설명을 요청했다. 송 교수는 “정조 때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발생한 오류”라며 “당시 중요 인물이 아니었던 許內隱萬의 이름 표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떻게 불렸나? 실마리는 <동국신속삼강행실>에서 찾을 수 있다. ‘內隱德은 논덕이, 內隱伊는 논이로 읽는다’고 설명했다. ‘內隱’은 ‘논’을 표기한 한자였다. 조선시대에는 ‘논’이 들어간 이름이 많았다. 논은 論으로 쓰면 되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두음법칙에 따르지 않았고 論은 첫머리에서도 론으로 읽혔을리라.

그 사람 許內隱萬은 허논만이었다.

나는 왜 수백년 전의 ‘이름 없는 이름’에 집착하는가? 올해는 임진왜란이 벌어진 지 420년이 지난 임진년이다. 허논만은 <난중일기>에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 이순신의 눈과 귀 역할을 신속하고 충실하게 수행한 인물이다. 그런 조상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을 어찌 가볍다 하리요.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KBS]
[자료]
송찬섭, 난중일기, 서해문집, 2004
이순신역사연구회, 이순신과 임진왜란1, 비봉출판사, 2005
최범영, 논이·노리개, 한겨레신문, 200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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