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정겨웠던 박하·한지원·김항아의 일편단심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두 달간 엎치락뒤치락 긴장의 레이스를 펼쳐온 SBS <옥탑방 왕세자>, KBS2 <적도의 남자>, MBC <더킹 투하츠>, 수목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끝이 났다. 주제와 배경이 서로 다른 만큼 평가는 보는 이의 취향이며 시선, 호오에 따라 천차만별로 엇갈리겠지만 어쨌든 세편 모두 해피엔딩, 천인공노할 악인들은 말끔히 제거됐고 주인공들은 다들 행복해졌다.

상투적이라는 소리가 들려올지는 모르겠으나 앞서 논란 불러온 월화 드라마 SBS <패션왕>의 분노를 불러오는 마무리에 비하면 이 얼마나 가슴 훈훈한 결말인가. 남자 주인공 역의 박유천, 엄태웅, 이승기 세 사람 모두 연기력을 검증 받아 입지가 한층 탄탄해졌고 <더킹 투하츠>는 특히나 조정석이라는 출중한 새 얼굴을 발굴해냈으니 금상첨화랄 밖에.

이 유래 없이 치열했던 수목 드라마 전쟁이 큰 잡음 없이 무사히 일단락 지어질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남자 주인공에 비해 집중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일관성을 유지해준 여주인공 캐릭터들의 공이 크지 싶다. <옥탑방 왕세자>의 박하(한지민), <적도의 남자>의 한지원(이보영), <더킹 투하츠>의 김항아(하지원), 이 셋은 번번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고 또 별 노력 없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자리며 성과를 얻어내는, 우리가 흔히 봐오던 나약한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허구한 날 악인에게 휘둘려 망연자실 눈물이나 짓고 있는 게 아니라, 남자에게 기댈 궁리나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았고 아무리 고된 어려움이 닥쳐도 징징거리지 않는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편단심, 한 남자만을 바라보지 않던가.

내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걸까?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양 손에 떡이라도 쥔 양 이 남자 저 남자 사이를 저울질해가며 오가는 여주인공에게는 도무지 정을 주기 어렵다. 초지일관 최재하(주상욱)와 김도윤(이상우) 사이를 오락가락했던 MBC <신들의 만찬>의 고준영(성유리)이며 막판에 보란 듯이 뒤통수를 쳐버린 <패션왕>의 이가영(신세경)이 바로 그런 예다.








더욱이 이가영의 경우는 이른바 ‘민폐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시청자에게 결정적인 배신감을 안겨주는 바람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연기자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찝찝함만을 가득 남긴 채 스러진 셈이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코 그립지 않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캐릭터, 연기자로서는 너무나 불행한 결과가 아니겠나.

그에 비해 박하, 한지원, 김항아는 어찌나 정겨운 캐릭터들인지. 박하가 왕세자 이각(박유천)과 신하 3인방에게 자주 해주던 오므라이스도, 소주 안주로 짜먹던 스프레이 생크림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고 선우(엄태웅)가 선물한 스카프를 내내 두르고 나오던 지원의 청초한 모습도 그리워질 것 같다. 그리고 항아의 애교가 묻어나는 ‘오마니’ 소리와 눈웃음도, 총을 들었을 때의 당당함과 패기도 자주 기억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벌써 그리운 장면들이 하나 둘씩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뭘 봐야 하나’, 매주 수없이 갈등하고 망설이게 만들었던 세편의 드라마들, 정 확 떼는 결말이 아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맙다. 새롭게 출발하는 수목 드라마들, 이번에도 전쟁일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SBS, KBS2,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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