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 소설보다 훨씬 어둡고 참담한 이유

[엔터미디어=오동진의 북앤시네마] 마치 종교적 참회의 얘기를 담고 있는 듯, 고전적 분위기의 제목이지만 영화 <고백>은 파격적이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마성(魔性)이라고 하는 것이 작게는 가정의 단위에서, 크게는 사회라는 단위에서 어떻게, 또 얼마만큼 그 모순과 부조리함이 중층적으로 쌓여져서 만들어지는 것인 가에 대한 깊은 화두가 담겨져 있다. 영화 <고백>은 구원받기 위한 애처로운 몸짓 때문이 아니고 결국은 어떤 일이 있다 한들 구원받을 수 없다는 참혹함, 그 덧없음에 대한 토로다. 마음 속 어두운 심연, 저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의 충격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비교적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간 작품이다. 이야기의 전체 얼개에서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어둡고 참담하게 느껴진다. 칙칙한 푸른 빛으로 일관하는 영화의 전체 톤(tone)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살인의 동기, 그 행동화, 끈질기게 이어지는 복수의 표독스러움, 그럼으로 해서 뒤바뀌어지는 선과 악의 자리매김 등등이 매우 구체적인 느낌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강독(講讀)의 어법과 일기, 편지 등으로 진행됐던 소설이 어쩔 수 없이 다소 평면적 느낌이었다면 영화는 그 위에 이런저런 건축물들을 세워 매우 입체감있게 사건을 재배치 해 놓았다.

무엇보다 영상의 흐름을 중간중간 느린 호흡으로 잡아 내며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의 이면과 그 심리적 근저를 포착해 내려는 스타일쉬한 시도가 돋보인다. 소설 <고백>의 잔인하고 잔혹한 느낌에 스타일을 불어 넣음으로써 영화 속 사건을 바라보는데 있어 일정한 소격효과(疏隔效果)를 만들어 내는데도 유효한 성과를 내고 있다. 나는, 우리는 저기 저런 사건과 무관한가, 유관한가. 우리 모두 저 참혹한 일들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들 머릿 속에서 그리고 가슴 속에서 고백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영화의 시작은 여느 중학교 1학년 교실 안 풍경과 다름이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재잘되고, 선생에 대한 예의는 눈꼽만큼도 없지만 정작 담임인 유코 선생(마츠 다카코)은 아이들의 그런 모든 모습이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담담하게 말을 시작한다. 오늘은 2학기 마지막 수업. 이제 아이들은 2학년으로 올라갈 참이다. 그렇다면 담임선생이 하는 말은 아쉬움과 격려의 메시지일까. 전혀 아니다. 유코 선생의 얘기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얘기의 핵심은 얼마 전 학교 근처 수영장에 빠져 죽은 자신의 어린 딸 미나미가 사실은 반 아이 들 중 두명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며 그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그런데 어떻게 단순 사고사로 치부돼 처리됐는지, 자신은 그 범인 학생들에게 어떤 벌을 내리려고 하는지 등등에 대한 것이다. 유코 선생은 오늘 수업을 끝으로 학교를 떠날 예정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확신하는, 학생 둘의 우유에 에이즈균이 들어있는 혈액을 타놓았다고 얘기한다. 그 에이즈균은 자신의 남편이 될 뻔 했던 연인의 몸에서 추출한 것이다.

영화 <고백>의 내러티브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사실은 매우 복잡하며 다층적이다. 다중시점으로 분산돼 있기도 하다. 유코 선생의 독백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곧 살인범 두 아이, 슈야와 나오키의 얘기로 옮겨 가며 중간에는 슈야를 동정하고 사랑하다 비극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 미즈키의 얘기로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그 모든 관계들은 씨줄낱줄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져 있다.

등장인물들 모두, 성인이든 중학생의 어린 아이들이든,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 속 모든 사건이 갖고 있는 원인의 핵심 카테고리다. 유키 선생은 아이의 아버지가 에이즈 환자였고 결국 아이까지 살해당하고 마는 불행을 겪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악마적 캐릭터인 슈야는 천재과학소년이지만 그 능력을 물려 준 어머니에게 어릴 적 가차없이 버림을 받았다는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의 모든 이상행동은 모성애 결핍에 따른 것이다. 나오키는 나오키대로 단아하고 안정적인 중산층 자식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에서는 왕따에, 집안에서는 마마보이에 불과한 아이에 불과하다. 이 아이는 한번도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뭔가를 인정받은 적이 없다. 이들 사건에 방관자 역할을 하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가장 객관적이고도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미즈키 역시 가족 모두를 묻지마 식으로 살해한 ‘루나시’란 이름의 정신이상 소녀를 숭배하는, ‘마음 속 폭풍우’를 안고 살아간다. 그녀가 슈아에게 쉽게 빠져들게 되는 건 그 때문이지만, 또 바로 그 때문에 이 아이의 운명은 비극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음이 일찍부터 감지된다.

<고백>은 좁은 교실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이윽고 그 핏빛 분위기가 천지사방으로 튀어 나가며 일본사회 전체를 적색으로 물들인다. 이건 교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일본사회가 늘상 겪고 있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준다. 좁은 우주이고 소년소녀들 얘기같지만 일본사회 전체라는, 큰 우주에 대한 우려와 걱정,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모든지 침착하고 정돈된 것처럼 보이는 일본사회 내부가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한 균열에 몸살을 앓아 왔음을 나타낸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늘 담담한 척 애를 써왔지만 일본사회의 이상성은 이미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또 수많은, 고립된 인간관계에서 발아되고 있음을 영화는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

영화 <고백>은 일종의 복수극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이야기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으로 양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지점과 경계는 뒤로 가면 갈수록 애매해지고 중첩된다. 복수를 통해 피해자는 과연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오히려 가해자와 자리만 바꿈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영화의 맨 마지막 유코 선생이 ‘다 장난이었어’라는 속삼임처럼 영화는 지금까지 벌려 놓은 끔찍한 이야기들이 상상에 불과한 것이었다며 한걸음 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과연 다 장난이었을까. 그냥 재밌자고 한 얘기였을까. 어쩌면 이런 얘기가 그냥 영화에 불과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얘기가 현실적인 것인지 아니면 아주 비현실인적인 것인지, 그 판단은 각자의 몫일 뿐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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