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어머니가 제게 소홀히 하신 것 때문이 아니에요. 엄마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고, 계기가 있었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잘못 사귀었어요. 나쁜 친구를. 걔가 절 못살게 하고 억압하고 그랬는데. 거의 1년 정도를요. 그런데 수능 치고 집에 있을 때 엄마에게서 그 애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에서 한 아들의 말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한 집에 살면서 무려 2년 동안이나 말문을 꼭꼭 닫아왔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과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면서 유독 어머니와의 소통을 거부해온 아들. 듣는 것만으로도 돌덩이를 얹은 양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다. 금이야 옥이야 길러왔을 귀한 아들이 갑자기 말을 안 하는 건 물론 눈도 마주치지 않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오죽이나 억장이 무너졌을꼬. 심지어 신검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어머니는 모르셨다고 하지 않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아들이 입대를 하고 난 다음에야 아셨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닐까,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말 못할 까닭이 있는 건 아닐까, 그간 아마 별의 별 생각을 다 하셨으리라. 달래도 보고, 눈물로 하소연도 해보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무슨 방법인들 안 써보셨을까. 어머니가 집에 계실 적에는 어머니를 피해 방에 틀어 박혀 아예 문밖출입을 삼가는 터라 요즘은 아들이 편히 밥도 먹고 생활할 수 있도록 어머니 쪽에서 귀가 시간을 늦추시기도 했다는데, 두 사람의 갈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나 누나들은 또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런데 2년 동안 가족의 피를 말려온 고민거리,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단절의 이유가 바로 어머니에게서 한때 자신을 모질게 괴롭혔던 친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라지 뭔가.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정도로 끔찍한 괴로움을 당했지만 용기가 없어 가족에게 입도 뻥끗 못한 채 홀로 속앓이를 하며 보낸 1년, 그 때의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어머니의 강압적인 면면들이 자꾸만 들춰내는 게 몸서리치도록 싫었던 모양이다. 가장 의지가 되어야 마땅할 어머니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나 몰라라 했다는 점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테고.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이 가족은 <안녕하세요>를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랜 고통의 터널을 묵묵히 극복해냈고 트라우마로 인한 마음고생이 심했으나 속 시원히 지난 일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덕에 그나마 어머니와의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졌으니까.

문제는 아직도 자신의 자식이, 형제가 학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아닐는지. 매일이다시피 기사가 되어 쏟아져 나오는 학원 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의 얘기. 수시로 내 아이는 안녕한지, 돌다리를 두드려 보듯 점검해봐야 옳을 시점이지 싶다. <안녕하세요>에 고민신청을 한 이번 종구 군 가족만 봐도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신이 엄청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마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지 않았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고민을 토로해봤자 사태가 해결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게다.

평소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부모에게 왜 얘기를 못하지?’ 하고 의아해했었는데 이번 고민 사연을 접하고 보니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당하는 폭력이란 게 얼마나 두렵고 끔찍한 건지 비로소 실감이 간다. 어려운 시간을 잘 버텨내준 종구 군이 대견하긴 하지만 홀로 견디게 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미안하다. 학원 폭력 근절도 시급하지만 적어도 말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고민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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