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두 아이두>, 하루 빨리 어리바리함을 걷어내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애당초 여주인공과 이뤄지지 않을 인연으로 정해진 채 출발하는 암울한 운명의 남자들이 있다. 늘 여주인공 주위를 맴돌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돌보고 챙기지만 언제나 그림자에 머무르는 신세. MBC <해를 품은 달>의 양명(정일우)이나 <최고의 사랑>의 윤필주(윤계상), <내 마음이 들리니>의 장준하(남궁민)가 그 좋은 예인데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찾아보자면 <닥터진>의 김경탁(재중)도 같은 운명을 지녔다.

혼인을 앞둔 영래(박민영) 아씨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정네(송승헌)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속이 아마 제 속이 아닐 듯. 이처럼 시청자들도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되지만 결국 여주인공의 선택을 받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인 것이다. 둘의 행복을 빌며 쓸쓸히 돌아서는 뒷모습, 이것이 비운의 캐릭터들의 마지막인데 <해를 품은 달>의 양명은 처절한 죽음을 맞기까지 했으니 가장 가여운 인물이지 싶다.

MBC <아이두 아이두>의 조은성(박건형) 역시 짝사랑에 그칠 비운의 캐릭터다. 공중파 드라마인 만큼, 그것도 막장 드라마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인 만큼 그가 어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혼전 임신을 한 여주인공 황지안(김선아)과 행복한 결말을 맞을 상대는 아이 아버지 박태강(이장우)이 아니겠나.

그런데 문제는 이른바 알파걸인 지안의 선택을 받게 될 주인공 태강이 도무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닐는지. 인물 훤칠하고 착하고 또 귀엽기는 하나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할 배우자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지안보다 열 살이 훌쩍 넘은 연하인데다가 지안이 이사로 재직 중인 구두회사의 신입사원이긴 해도 고졸 학력에 전직은 짝퉁 구두 업자, 심지어 지안이 디자인한 구두를 베껴서 판매한 이력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입사 자체도 실력이 아니라 어쩌다 얻어걸린 디자인 덕이었던 것.

그에 비하면 조은성은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배경의 전도유망한 산부인과 의사다. 선 자리에 이런 신랑감이 나온다면 어느 부모인들 흡족해하지 않으리. 게다가 배려 깊고 따듯한 인성까지 지녀서 지안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양가 부모들에게는 파혼의 이유를 자신에게로 돌려놓기도 하고 건강을 비롯해 여러모로 세심하게 지안을 챙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강의 무기는 오직 아기 아버지라는 사실 하나다. 굳이 더 보태자면 모성애를 불러일으킨다는 정도? 철딱서니가 없으면 뭇 여성을 매료시킬 패기라도 있어야 할 텐데 젊은이다운 패기는커녕 누가 보든 지안의 적수인 부사장 염나리(임수향)가 ‘우리는 옥상 친구가 아니냐’고 한 마디 하자 이내 쾌재를 부르는 한심한 인사다. 앞으로 차차 태강의 매력도 하나 둘씩 부각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지안이 하룻밤 실수로 발목이 잡힌 꼴이지 뭔가. 물론 태강이의 입장에서도 아무리 지안이 성공한 여성이라 하지만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들 하나 믿고 살아온 태강의 아버지(박영규)도 펄쩍 뛰었으니까.

경주마처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지안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이 바로 태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도대체 납득이 가야 말이지. 만약에 결혼이라는 걸 한다면 저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지안, 그리고 그런 그녀 때문에 가슴이 무너지는 은성. 지금으로서는 태강은 모처럼 마음이 통하는 짝을 만난 지안과 은성 사이의 걸림돌 일뿐이다.

MBC <신들의 만찬>에서 연인 하인주(서현진)에게서 고준영(성유리)으로 마음이 돌아섰던 최재하(주상욱)가 끝까지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드라마 속에서 한번 이미지가 고정되고 나면 그걸 되돌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하루라도 빨리 태강이 어리바리함을 걷어내고 뭔가를 보여줘야 할 텐데 지금으로서야 운 좋게 여자 하나 잡아 신분상승을 꿈꾸는 남자 신데렐라에 불과할 뿐이 아닌가.

그것도 부사장과 이사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저울질하는 개념 없는 청년으로 보이니 문제다.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 실수로 생긴 아이로 인해 시작된 인연, 모두의 반대를 극복하고 훗날 그들이 맞이할 해피엔딩이 부디 허무맹랑하게는 느껴지지 않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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