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미있었지만 당한 저 사람은 속상했겠다, 저 사람 어머니나 아내는 정말 마음이 아프겠다 싶었다면 그건 단연코 좋은 개그가 아니다.”

“당한 사람까지 같이 웃을 수 있어야 진짜 개그다.”

- 개그맨 최양락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방송에서 모창이나 성대모사를 통해 누군가를 희화화 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다. 본인이 보는 앞에서, 양해 하에 한다면 나쁘지 않지만 본인이 없는 자리라면 조롱하는 느낌이 들어 거북하다는 반응도 있고, ‘어쨌거나 연예인이니 아니냐. 잊히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회자가 한 번 더 되는 게 낫지 않으냐’는 반응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아닐는지.

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은 ‘대중이 그로 인해 웃을 수 있다면, 특히나 웃음을 주는 일이 직업인 연예인일 경우 흔쾌히 받아주는 편이 옳지 않겠느냐’이지 싶다. 대통령 성대모사도 하는 세상이거늘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연예인이 그 정도도 이해를 못하느냐,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을 한 순간에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한다. 순간 울컥해서 싫은 티를 낸다거나 항의를 했다가는 속 좁은 사람이 되기 십상이니까. 아무리 정중하고 완곡하게 자제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해도 자칫 잘못해 방송에서 그 사실까지 공개되고 나면 본인의 모양새만 더 우스워질 뿐이 아니겠나. 나중에는 오히려 항의했다는 부분이 토크 소재가 되어 지긋지긋할 정도로 방송을 타니 당사자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게다.

이런 일을 가장 많이 겪었던 분이 작고하신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아닐까? 워낙 남다른 말투와 외모 때문에 성대모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아마 수많은 개그맨들이며 개인기가 필요한 연예인들이 이분의 성대모사를 연습했을 게다.

지난 주 MBC <세바퀴>에 패널로 등장한 개그맨 이혁재는 늘 그래왔듯이 고 앙드레 김을 토크 소재로 삼았다. 그분 흉내를 내는 것이야 어제 일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얘길 듣고 있자니 기분이 점점 언짢아졌다. 본인이 마뜩치 않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불쾌감을 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굳이 즐거워야 할 연말 시상식 자리에서, 그렇게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그분 흉내를 내야 했을까? 그것도 앙드레 김 본인을 앞에 두고.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자? 개그맨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자신을 개그 소재로 써도 좋다고 ‘허락을 했느니 안 했느니’를 두고 또 다른 패널과 옥신각신을 벌이는 게 아닌가. 각자 성대모사를 해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유일한 사람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시상식 날 이후 아이들 옷까지 선물하며 “차라리 당신이 하세요.”라고 하셨다지만 설마 그게 진심어린 허락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몇 명이나 이 방송을 보고 웃었을지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 아니냐고. 오래 전 MBC <명랑 히어로>에서 개그맨 최양락이 후배들에게 했던 조언이 생각났다. “당한 사람까지 같이 웃을 수 있어야 진짜 개그다”

그리고 그 이후 KBS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에서 “나는 재미있었지만 당한 저 사람은 속상했겠다, 저 사람 어머니나 아내는 정말 마음이 아프겠다 싶었다면 그건 단연코 좋은 개그가 아니다”라는 말을 보탰었다.

몇 년 전에 들었던 얘기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이유는 기본을 망각한 이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물론 도리를 잊은 개그맨보다 편집을 맡은 제작진이 더 문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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