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필'-'SNL', 이런 파격적인 말들이 통하다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올해 들어 TV가 ‘19금’ 면에서 놀랄 만치 스스럼없어졌다. 국내 제작 드라마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외화에서 주인공들이 입맞춤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화면이 느닷없이 새까맣게 바뀌던 시절을 살아본 나로서는 솔직하다 못해 파격적인 TV 속 변화들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노골적인 베드신 연출이라든가 대담한 노출을 일삼아 거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며 성을 대하는 잣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SBS <신사의 품격>에서는 남자 주인공 김도진(장동건)이 짝사랑하는 서이수(김하늘)를 두고 다른 여자와 동침을 하기도 하고, tvN <로맨스가 필요해>에서는 처녀들이 자신의 성생활이며 성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KBS2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버지가 딸에게 과하게 성교육을 하려고 드는 게 고민이라는 민망한 소재가 공공연하게 다뤄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유난히 성교육에 집착했던 까닭을 듣는 순간 모두가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상황이 아니겠나.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파격을 거론할 때 tvN 박진영 편의 ‘우리 재혼했어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발칙한 전개를 TV에서 마주하게 되다니! 그러나 나는 박진영과 신은경이 주고받은 감칠맛 나는 대사들을 이 자리에 옮겨 쓸 수도,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공개적으로 성적인 단어를 발설하는 건 점잖지 않은 일이라고 교육받은 세대이니까. 그렇다고 학교나 가정에서 딱 부러지게 그리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본능적으로 그러는 편이 옳다고 알고 있었을 뿐.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개화되다 못해 이미 혼전 임신이 흉이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유독 TV에서는 일어나서는 아니 될 비극으로 몰고 가곤 했다. 이제껏은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딴 곳에서 단 둘이 1박을 하게 됐다 해도 여주인공은 선을 그어 놓고는 여길 넘어와서는 안 된다는 웃지 못 할 대사를 읊어대곤 했으니까. 여주인공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랑스럽다고 여겼다.










그러나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주열매(정유미)는 윤석현(이진욱)에게 “나 오빠랑 자고 싶어. 내 몸이 원하고 있어.”라는 식의 지극히 원초적인 대사를 망설임 없이 던지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또 순수하게 보인다. 극중 열매를 오랫동안 좋아해온 신지훈(김지석)의 표현에 의하면 뻔뻔스럽게 솔직한 처자이긴 하나 오히려 노골적으로 자기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더 순수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넌 그걸 꼭 말로 해야 되냐? 말로 하면 더 좋아?” 간뿐만이 아니라 열매에게 가능한 건 다 줄 수 있다는 석현이 묻자 열매가 대답한다. “응, 더 커지잖아 마음이. 봐. 난 껴안으면서 다 말했는데,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 그런데 오빤 왜 말을 안 하냐고.” 그러자 석현이 말한다. “난 말을 안 할 때가 더 좋아. 좋아한단 말을 할 때보다 참고 있을 때가 더 좋은 것 같아.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이 안에서 그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 두 사람은 사랑하는 순간이나 헤어졌을 때나 늘 말로 옥신각신을 한다. “무릎에 키스하는 거, 별로야.”, “별론데 그런 신음소리가 나오나?”

이처럼 한참 살아본 부부지간에나 오갈법한 대사들을 주고받지만 전혀 야하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거북하지도 않다. 또한 요조숙녀 같은 모양새의 열매 친구 우지희(강예솔)의 입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불감증이며 속궁합이라는 단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이인데 잠을 안 자? 그게 말이 돼?”라는 선재경(김지우)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될밖에.

여자들의 수다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섹스 앤더 시티>와 <로맨스가 필요해>가 다른 점은 노출을 비롯한 야한 장면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우리네 TV의 성적인 개방은 일단 말에서부터 시작된 셈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을 보며 자란 세대인지라 아직은 이 정도가 딱 좋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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