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97>, 이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톰 크루즈가 80년대 록스타를 연기한 뮤지컬 영화 <락 오브 에이지>를 보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7년 무렵이 개인적으로는 사춘기였던 관계로, 당시 라디오만 켜면 들을 수 있었던 주옥같은 로큰롤 넘버 하나하나에 내 심장은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 누구에게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머리와는 상관없이 가슴이 먼저 움직여 버리는 그런 작품들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른 바 ‘화합의 장르’라 불리는 뮤지컬인 만큼 이 영화 역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헌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두가 행복을 찾으며 끝나는 <락 오브 에이지>의 결말에서 마침내 심장을 넘어 눈시울까지 반응을 보이고 만 이유는, 단지 행복에 겨운 그들의 노래가 벅차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뮤지션을 꿈꾸며 대도시 LA로 온 순박한 처녀총각과 최고의 자리에서도 결핍된 사랑을 찾아 헤매던 록스타는 저마다의 꿈도 이루고 사랑도 찾아서 결국 셋은 한 무대에 선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7년이다. 그로부터 4년만 있으면 시애틀 출신의 왼손잡이 기타리스트가 록의 트렌드를 갈아 엎어버릴 것이라는 사실과, 그와 동시에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L.A.의 록씬은 침체의 길에 접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말하자면 <락 오브 에이지>의 그 화려했던 결말이 스산했던 것은 그들이 부르던 노래가 마치 L.A.메틀의 스완 송처럼 들렸기 때문일 게다.

이처럼 추억을 매개로 한 작품들은 대개 그 시대가 지닌 맥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마련이다. 현재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이 드라마의 첫 두 회를 보았을 때만 해도, H.O.T를 구심점으로 한 90년대 아이돌 열풍의 대단원은 IMF 사태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건국 이래 처음으로 자유로운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몇 년을 회고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고작 5회 무렵에 IMF를 우회적으로 통과하고 1998년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리고 8회에 이르면 이들의 고등학교 시절도 끝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진학상담을 맡은 선생님 태웅(송종호)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하고 2012년 현재, 방송작가가 되어 있는 시원(정은지)을 비롯하여 학창시절 공부와는 담 쌓았던 아이들이 저마다의 적성을 찾은 모습들이 짧게 비쳐진다. 유력 대권후보가 되어 있는 태웅의 모습까지 함께.

마치 거짓말 같은, 혹은 기계의 신이 내려온 것 같은 이 후일담은 어쩐지 스산하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느덧 이 사회가 그런 결말을 용납하지 않게 되어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서울대학교 입학생 중에 강남 혹은 특목고 출신의 비율이 급상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과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스펙’이라는 이름의 굴레는 이제 초중고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시대에, <응답하라 1997> 속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은 마치 청소년들이 꿈을 품을 수 있고 또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의 회고담처럼 보인다. 그리고 학생들의 꿈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선생 태웅을 대권후보에 앉힘으로서 그 회고담은 당대 현실의 판타지로 확장된다.

아울러 1997년은 청소년이라는 단어에 가슴 뛰는 로망을 부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기도 했다. 그 해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를 끝으로 더 이상 MBC는 청소년 드라마를 만들지 않았다. 2년 후 KBS에서 만든 청소년 드라마 <학교> 시리즈는 로망에 앞서 현실을 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까지 일요일 오전 시간대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KBS의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에서 청소년 드라마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팔청춘들의 사랑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조민준 zilch92@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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